윤카피를 통해 훔쳐보는 광고 프로의 세계
윤카피를 통해 훔쳐보는 광고 프로의 세계
18년 차 카피라이터 윤카피(윤병룡)의 광고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2008년에 나온 책이 그를 '18년 차'라고 소개했으니, 이젠 22년 차쯤 되었겠다. 놀랍다.). 이 책의 타겟은 분명하다. 그건 바로 '신입 카피라이터' 혹은 '카피라이터 지망생'이다. 비중을 따지자면, 전자의 경우가 조금 무거운 거 같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이런 것일 거다 : 실전 참고서. 윤카피는 이 책에서 '실전'을 말한다. 애매하게 돌려 말하는 것도 없다. 때로는 독설처럼 읽힐 정도로 직설적이다.
아포리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1~2페이지 정도로 압축된 그의 생각들이 도열해있기 때문이다. 319페이지에 이르는 책 속에 그 흔한 삽화 한 장 없다. 대신 행간이 좁은 문장들이 빼곡하게 페이지마다 들어차 있다. 목차는 두서가 없다. 광고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얘기하다가, 삶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가, 카피라이터 지망생에 대한 직언도 했다가, 뒷담화(?)도 했다가, 신입 카피라이터들을 준엄하게 꾸짖다가, 광고에 대한 상식을 차분히 설명해주다가, '광고회사'의 진짜 모습을 고발(?)하는 등 그의 무수한 '아포리즘'에는 배열의 틀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읽게 된다. 책 속에 담긴 목소리가 날카롭고, 겁을 주지만 그럼에도 계속 읽게 되며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불편하지 않다. 직설적인 그의 화법은 역설적으로 광고에 대한 그의 강한 애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프로'답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는 단지 '냉혹한 정글'이면서 동시에, '프로'의 세계인 것이다. 책 속에서 '프로'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프로듀서, 뭐 이런 거 빼고), 윤카피는 아주 명확한 방법으로 '광고'라는 프로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도리어 이끌린다. 그의 애착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속속 드러난다.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3D의 최첨단 전선에 있는 겁니다. 3D가 무엇인지 다 아시죠? 3차원 그래픽이요? Dirty, Difficult, Danger 라고요?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카피라이터의 3D는
Different, Developement, Discovery 라고 생각합니다."(p.206)
어수선하지만 진정성 있는 이야기들
사실 문장이 유려한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어수선하다. 구어를 채록한 것처럼 가독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틀린 말이 거의 없고, 불필요한 문장도 역시 거지반 없다. 이건 모순이다. 어수선하면 틀린 말이 넘쳐나고, 불필요한 문장이 곳곳에 잠복하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이 어수선함에도 어색하지 않은 건 쓰는 이의 진정성 때문일 거라 믿는다. 진정성과 경험에서 얻는 확고한 신념이 두서 없이 쓴 것 같은 글에 힘을 부여했으리라.
창의, 퍼플멍키
그는 '퍼플멍키'에 대해서 말한다.
"사람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기, 사람의 두뇌와 뇌파를 연구 하는 한 실험에서 사람에게 제약을 두지 않고 마음대로 상상하게끔 했었는데 막 상상하다 다다른 게, 멍키, 그 빛깔이 퍼플이라서 퍼플멍키라고 했다는 군요. (중략) 그래서 엉뚱한 상상에 대한 결과물을 퍼플멍키라고 한답니다."(p.190)
그의 설명만으로는 '퍼플멍키'가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표제로 쓰일만큼 중요한 키워드 같은데, 유독 이 부분이 애매하다는 건 좀 아쉬웠다. 뇌파를 측정한 그림이 원숭이 모양에, 보라색이었다는 걸까? 아님 다른 뜻일까? 어쨌든 "엉뚱한 상상에 대한 결과물"을 퍼플멍키라고 하나보다. 결국, 카피라이터는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말한다.
"가두지 않았음 참 좋겠습니다. 나부터라도. 갇히지 않았음 참 좋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p.131)
그는 책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카피라이터의 역량 강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카피라이터의 역량이란 다름아닌 크리에이티브다. 바로 퍼플멍키다. 그는 퍼플멍키를 포획하기 위한 노련한 사냥술을 가르친다.
pupple monkey?
결국 광고는 '함께' 하는 것
그는 '태도'에 관하여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읽어보면, 광고회사 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에 몸 담더라도 필요한 조언들이다. 특히 그는 팀워크를 매우 중시하는 것 같다. "왜 잘 하던 사람이 독립을 하면 그저 그럴까" 편에서 그런 생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모든 것은 그 혼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윗 사람, 아랫 사람, 또 다른 지원, 이런 것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직의 윗 부분에서 별로라고 여기는 사람도 어떤 조합으로 이동시키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이 제대로 살아나게 됩니다."(p.316)
몇 페이지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광고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그가 얼마나 사람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가늠하게 한다. 그는 재차 강조한다. 결국 광고쟁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있다고.
애정 어린 선배의 목소리
여기서 말한 것들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책 속엔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사람에게라면 '뼈가 되고, 살아 될' '말씀'들이 가득하다. 일견 날카롭지만, 애정 어린 선배의 목소리를 한껏 들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감사하기까지 하다.
오늘도 중언부언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