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사각형

[영화] 진짜 관계란 무엇인가? - <소셜네트워크>(2010)

고만하이 2012. 2. 10. 04:29




이 영화는 어떤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의 향방이 결정될 것 같다. 범박하게 그 시선의 종류를 결정하자면, 하나는 '미학적 관점'이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의성'이 될 것 같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미학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큰 점수를 줄 수 없다. 일종의 '법정 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영화는 그 구성이나 편집면에서 우리나라의 인기 TV프로그램 '사랑과 전쟁'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배우의 연기'가 미학적 요소에 포함이 된다면, 주인공 역을 맡은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극단적 좌뇌형 인물'이 주인공의 캐릭터라면, 아이젠버그는 그것을 충실하고도 소름돋게 연기해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것은 추켜세울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시의성'이라는 다소 '영화 외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들여다보자면, 당연 압도적이다. 올해 우리나라 인터넷 상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본격적인 등장이었다. '트위터'가 입소문을 통해 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언론에서 오히려 이 트위터 타임라인을 배끼기 시작했고, 관공서며 언론이며 기업체며 할 것 없이 트위터 타임라인에 뛰어들었다. 가히 선풍적인 열품이다. 트위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언제부터인가 '페이스북'도 덩달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트위터가 공개적 개방적 형태라면, 페이스북은 폐쇄적 구조를 갖고 있는데, 무리 짓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본성에 어필한 그 서비스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는 이 '페이스북'의 설립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것은 이 영화가 '페이스북'이라는 기업의 '단순한 설립 단계' 즉, '공식 홈페이지의 연혁이나 나와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페이스북의 설립과정 속에 나타나는 주인공들의 '관계'이다. 실제 '페이스북'의 직접적 설립자인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 왈도 세브린(앤드류 가필드), 숀 파크(저스틴 팀버레이크) 간의 인간적 관계 뿐만 아니라, '윙클보스 형제'와의 관계 말이다. 이 영화는 이들의 우정과 배반, 계약과 파기, 선의와 악의, 사랑과 이별 등의 복합적인 인간 감정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그게 다 '페이스북'이라고 하는 대표적 '소셜 네트워크' 설립 과정이라는 틀 안에서 다루어졌고 말이다.
 
자, 우리는 이 지점에서 왜 영화제목이 '페이스북'이 아니고 '소셜 네트워크'인지 감지하게 된다. 영화의 핵심 스토리는 '페이스북의 설립 과정'임에도 제목을 '페이스북'이라고 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페이스북'이라고 하는 실존 기업의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지으면 '기업 홍보 영화'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 하겠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지만, 데이빗 핀처 감독의 본의는 또 따로 있을 것 같다. 바로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얘기다. 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표현을 쓰자면 '인맥'이 될 것이고 말이다.

우리는 주인공 마크 주커버그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전형적인 '극단적 좌뇌형 인물'로,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이자, 두뇌면에서만보자면 '천재'이다. 두가지 명제를 합치면 아마도 '외톨이 천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자기중심적 성향 때문에 그는 자신이 사랑하던 애인에게 퇴짜를 맞는다. 애인은 이별을 통보하면서 마크에게 말한다.
 
"넌, 재수 없어."
 
애인에게조차 이런 말을 듣는 그에게 친구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는 대단히 유치한 복수극을 준비한다. 하버드 서버를 크래킹해 기숙사 여학생들의 사진파일을 훔쳐서 '외모 비교 사이트'를 만든 것이다. 지극히 '마크스러운 복수'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다. 그는 헤어진 애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개재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페이스북 탄생의 전조를 알릴 뿐 아니라, 마크 주커버그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려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에게도 절친한 친구가 하나 있다. 유일한 한 명이다. 그는 '왈도 세브린'으로, 돈만은 친구다. 그러나 문제는 '영악하지 못하다는 것'. 이것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그러한 성격 때문에 그는 '돈 내놓으라'는 마크 주커버그의 명령조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왈도'에게서 받은 돈으로 '마크'는 페이스북을 운용할 서버를 구입한다. 일종의 자본금이었던 셈이다. 이 페이스북은 날로 달로 커진다. 가입자는 폭발하고, 그럴수록 그들의 관계 역시 폭발한다. 우리는 페이스북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점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그들은 '가상 현실'인 '네트워크'상의 관계는 거대하게 꾸려가면서도 '실재 현실'에서는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여기서 보듯이 이 영화는 '페이스북'이라고 하는 'SNS의 대표격'을 내세워 '소셜 네트워크'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선언한 이래에, '사회적 관계'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되풀이되어 왔다. 인간은 끊임없이 사회 혹은 타자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실존적 명제가 당연스레 인정되어온 것이다. 맞다. 인간은 관계 없이 '인간답게' 생존하기 어렵다. 또한 인간은 관계를 갈구한다. 그래서 SNS라고 하는 별종의 '사회망'을 건설했고, 그 규모를 더욱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에 열광한다. 기존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SNS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 열광에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진짜 관계란 무엇인가?"

■('1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