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사각형

팬도럼 Pandorum 2009

고만하이 2012. 7. 12. 07:00



팬도럼 (2009)

Pandorum 
8
감독
크리스티앙 알바트
출연
데니스 퀘이드, 벤 포스터, 캠 지갠뎃, 안트예 트라우에, 쿵 리
정보
SF, 공포 | 미국, 독일 | 108 분 | 200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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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평점은 글쓴이의 평점이 아닙니다.

* 스포일러 없습니다.


SF영화를 선택하면서, 내용의 사실관계를 따지는 일만큼 우매한 일도 없다. 어차피 상상의 산물이니 '현실가능성'이란 100%로 '가정'하고 관람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절대적인 법은 아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영화를 분석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적 지식으로 영화를 분석할 깜냥은 없다. 내가 가진 과학적 지식이란 누구나 알만한 '상식'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너무 따지다 보면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 개봉했던 영화 <팬도럼>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마지막 장면의 임팩트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탈출용 캡슐' 수 천 개가 새로운 지구 '타니스'의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르는 장면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 말미의 '반전'과 그 강렬한 마지막 장면(비록, CG일지라도!)을 뇌리에 새기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즈음에서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지막 장면' 때문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이거다. "마지막 장면'만' 기억나!" 즉, 마지막 장면 1분 여를 제외한 100여 분의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사실 다시 보고 나서도, 마지막 반전과 타니스의 바다가 나온 장면을 제외하곤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영화는 100여 분의 러닝타임 내내 '눈이 아플 정도'로 어둡고, 끊임없이 괴물이된 '변종 인간'들에게 추적 당한다. 당연히(?) 괴물들은 인육을 드신다. 그 괴물들은 원래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거대 비행선 '엘리시움'에 탑승한 6만 명의 승객 중 일부였는데, (새로운 행성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그들에게 주사된) '진화 촉진제'(?)가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반응하면서 탄생한 '돌연변이'들이다. 그들은 괴상하게 생겼고, 피부에는 끈적한 점액질이 흐른다. 어디서 본 듯하다. 본 듯, 본 듯, 그래, 에일리언과 너무나도 닮지 않았는가?(에일리언 제작진이 참여했다 하니, 말 다 했다.) 그 괴물들에게 인간들이 좇기고 결국 승리한다는 스토리는 진부하기 짝이 없다(무엇보다 베르나르의 <파피용>의 컨셉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SF는 머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서두에서 나는 말했다. 실제로 나는 보는 내내 손바닥에 땀을 쥐었던 것이다. 시종일관 어두운 시야와 불쑥 불쑥 나타나는 괴물 탓이기도 했지만, 여름 한 철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진부할지언정 '눈에 거슬리는 흠'만 없으면 된다. 실제로 이 영화는 '눈에 거슬리는 요소'는 별로 없다. 물론 그게 문제이기도 하지만.

  영화 제목으로 쓰인 '팬도럼'은 영화 내에서도 소개되고 있지만, "인간이 우주 공간에서 장시간 생활할 때에 나타날 수 있는 패닉 상태로 신체적, 정신적 이상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드넓은 우주 공간에 '나 홀로' 존재하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져"있는 질병이다. 이 질병 자체는 실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정거장 등에 장기간 거주하는 러시아 우주인들에게서 실제로 나타났던 병이라고 한다. 영화 말미로 갈수록 이 '팬도럼'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의 짧은 '반전'을 위해 100여 분의 러닝타임이 할애되었다는 느낌이 짙다. '어디서 본 듯한' 설정 역시 이 영화를 B급에 머물게 한다. 아무리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100여 분 내내 집중해서 봤다고는 해도, 아쉬움이 남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주목할만한 곳은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메시지'다. 아래 대사를 살펴보자.


  "도덕에서 벗어나. 도덕에서 벗어나는 것이 궁극의 자유야."

  "도덕주의자들이 지구를 파괴했어."

  "신은 죽었어! 지구와 함께."


  그럴 듯한 메시지이지 않은가? 이 대사 때문에 전체의 서사가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될 뻔... 했지만, '괴물-인간'의 단순 구도는 아쉽다. 좀비물을 보지. 차라리. 물론 심심파적 영화로는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