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주제 사라마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영화가 원작 소설에 매우 충실했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기본적 개연성이 무시한 점까지도 그대로 옮긴 점 등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이다. 개연성이란 다름 아닌 '믿게끔 하는 장치'라고 할 때, 이 영화는 정말 '아무 장치'도 없다. 왜 눈이 머는지, 왜 정부는 그토록 눈 먼 자들을 증오하는지, 군인들은 왜 그토록 눈 먼 자들을 깔보고 멸시하는지, 그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이왕의 나였다면 이 영화에 대해 가혹한 혹평을 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 영화에는 분명히 강력한 메시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눈 먼 자들의 도시>의 메시지는 의외로 간단한 거 같다. 1.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기실 장님이다. 2. 군계일학으로 '눈 뜬 자'가 있다. 3. 그 '눈 뜬 자'를 알아보고 따르는 사람은 같이 '눈을 뜬다'.
이제, 3개의 메시지에 영화 속 장면들을 하나하나 대입시켜 보면 된다. 수학에 대입법이 있듯 나는 영화감상법에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안과의사의 아내'를 보자. 모든 이가 눈이 먼 병동에서, 그녀는 오로지 유일한 '눈 뜬 자'이다. 그는 눈 먼 자들을 돌보며, 그들의 역겨운 모습들을 모두 지켜본다.
영화 속에 '원래 장님'이었던 자가 등장한다. 그는 '장님계의 왕'이다. 원래 안 보였으니 '보이는 세계'를 동경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탐욕주의자다. 속물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그는 눈 먼 수용자들을 강탈한다.
주의깊게 보지 않았다면 쉽게 지나쳐 버렸을 부분도 있다. 바로 보건부 장관의 담화 발표 장면이다. 장관은 연설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나도 여러분들처럼 눈이 멀었다."라고 말한다.
우리 말로 "눈이 멀었어."라고 번역된 원어는 "I can't see."이다. 직역하면 "난 볼 수 없어."이다. 이 즈음에서 나는 아바타의 명대사를 떠올린다. "I see you." "나는 당신을 봅니다." 그러나 눈 먼 자들은 볼 수 없다. 무엇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우리 말 속담에 "눈 뜬 장님"이라는 표현이 있다. 눈은 떴으되 보지 못하는 멍청이를 이르는 말이다.■ ('1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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