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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

[장편소설] 노을(1978년), 김원일

 

 

"산 위에 걸린 쌘구름이 노을빛에 물들었다. 노을은 산과 가까운 쪽일수록 찬란한 금빛을 띠고 있다. 가운데는 벌겋게 타오르는 주황색, 멀어질수록 보라색 쪽으로 여리어져, 노을을 단순히 붉다고 볼 수만은 없다. 자세히 보면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음에도 사람들은 노을을 단순히 붉다고 말한다."(p.344-345)

 

우리의 현실이란 얼마나 불확정적인가. 이것이기도 저것이기도 그 둘이기도 하고 둘이 아니기도 한 그 애매모호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될까. 김원일의 <노을>은 대한민국 사람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 이념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 특히, 김갑수가 빨치산 아버지 김삼조를 용서하는 장면은 단연 압도적이다.

 

"내가 나뿐 사람이지마는......" 아버지는 멈춰서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네가 내 아들이 틀림읎제, 하듯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왕방울 눈은 어느 누구의 눈일 수 없는, 아버지의 눈이었다. "니만은 이 애비를 나뿐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거래이."(p.315) 

 

"지금은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리라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당신 이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아버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p.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