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썸네일형 리스트형 [서평] 매혹적인 환멸의 세계 - <환상수첩>(김승옥) 어느 날 밤, 나는 죽음을 노래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내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어둡고 습한 곳으로 침잠하려 했는지, 나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게 아주 고통스러운 까닭에서 비롯되는 것. 그것이다. 그것만은 선명하게, 형언할 수 없는 무엇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죽인다는 뜻의 '자살'은 대개 환멸에서 비롯된다. 세상에의 환멸이든, 신에 대한 환멸이든, 사람에 대한 환멸이든, 그 무엇에 대한 환멸이든-결국 같은 맥락일 수 있지만- 환멸이란 소소한 조각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죽음에로의 충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여기, 그 환멸의 한 가운데 선 주인공들이 있다. 소설가는 그들을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