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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의 사각형

무작정 떠나는 당일치기 경주여행(3) - 안압지부터 불국사까지

경주 동궁 및 월지(안압지)에서 경주국립박물관까지 역시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원화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내려다가 보면 우측에 박물관 입구가 보이는데 거리는 대략 600미터 정도, 10분 정도 소요된다.

 

1. 신라 천년 유물의 보고 경주국립박물관

* 본 포스팅에 사용된 사진 중 박물관 내부 사진들은 박물관 안내원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뒤 촬영하였습니다. 경주국립박물관 상설전시장 내에서는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촬영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은 무료입장이다. 다만 입장권은 발급 받아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성덕대왕신종'이다. 소위 '에밀레종'으로도 불리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었다. 한국인이라면 이 종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한국 최대의 종이며, 최고의 수작으로 평가 받는 종이기 때문이다.

 

 

양산을 들고 열정적으로 종에 대해 설명하시는 해설사님. 나는 해설사를 대동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다른 분들에게 설명하는 걸 엿들었다. "최고의 종"이라는 말, "대한민국에서 으뜸 가는 종"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시는 해설사님에게서 우리 역사에 대한 지극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전시관 정문 앞에는 익숙한 탑 두 기가 모셔져 있다. 다름 아닌 불국사의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국보 제21호)이다. 물론 가품이지만, 진품과 모양새가 거의 완벽히 똑같다. 특히 다보탑(위 사진) 모형에는 지금은 일본으로 유출되어 1기 밖에 남아있지 않은 '돌사자' 네 마리가 다보탑의 원형을 증언하고 있다.

 

 

신라는 금제의 나라다. 천마총에서 엿들었던 해설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전세계에 남아있는 금관은 10개 뿐이에요. 그 중 8개가 신라 금관이죠. 대단하죠?" 신라 금관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천과 인이 상통한다는 신라인의 거대한 세계관이 함축되어 있다. 신라 금관은 '나뭇가지'를 본뜨고 있는데 그것은 높은 고목나무가 신령한 세계와 연결된다고 믿었던 선인들의 신앙과 관련있다고 한다(대표적인 예가 서낭당). 위 사진 속 유물들은 금관총 출도 유물들이다.

 

 

신경주역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던 '십이지상'이 여기에도 있다. 청동십이지상이라고 한다. 앙증맞다.

 

 

덕업일新 망羅사방. '신라'라는 국호가 갖는 의미다. 신라의 국호 정립과 관련한 역사적 기록은 '청개정국호겸상왕호서'[請改正國號兼上王號書]에 남아있다. 이 글은 처음부터 독립된 문장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고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지증마립간(知證麻立干) 4년조의 기록을 한말의 장지연(張志淵)이 『대동문수(大東文粹)』를 편찬할 때 내용의 일부를 개작하여 한 편의 문장으로 수록한 것이다. 글의 이름을 ‘청개정국호(請改正國號)’라 한 것도 이 때 붙인 것이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시조께서 나라를 창업한 이래로 나라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혹은 사라(斯羅), 혹은 사로(斯盧), 혹은 신라(新羅)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신들의 생각으로는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德業日新)는 뜻이며, ‘라(羅)’는 사방을 모두 휘몰아 들인다는 뜻(網羅四方)이니 그것을 국호로 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 보건대 예로부터 나라에는 모두 임금을 ‘제(帝)’라 하기도 하고 ‘왕(王)’이라 하기도 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이래로 22대에 이르도록 오직 방언으로만 불렀을 뿐 존귀한 이름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뜻으로 삼가 ‘신라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하니 왕이 이 말을 따랐다.

 

이로써 보면 신라가 국호를 ‘신라’라 한 것도 이때에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신라에서 임금의 칭호를 ‘왕’이라 한 것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게 해준다./네이버 백과사전

 

 

울산 반구대 암각화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상설 전시관을 빠져나오면 특별전시관에 이를 수 있다. 지금은 고운 최치원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최치원 진영 전시 중 눈에 띄었던 진영 X-ray 촬영본. 완성본에서 사라진 원본의 동자들이 보인다.

 

 

여러 진영들. 조금씩 느낌이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특징적인 이목구비는 같다.

 

 

표준 영정. 다른 진영들에 비해 젊어보인다.

 

 

2. 불국사

 

 

불국사로 가려면 경주국립박물관 앞 버스 정류장에서 11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사진과 같이 수학여행단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들이 버스정류장을 에워싸고 있어서 버스를 두 번이나 놓쳐버린 후에야, 비로소 탑승할 수 있었다. 단속이 필요할 것 같았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버스로 대략 30분 걸려 도착한 불국사. 초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처음 찾는 불국사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경내 배치도는 아래와 같다. 나는 청운교 - 종각 - 극락전 - 대웅전 - 관음전 - 비로전 - 극락전 순으로 관람하였다.

 

 

 

 

 

초등학교 때는 이 사천왕들이 참 무서웠는데.

 

 

조금 걸어올라가자 불쑥 나타나는 불국사. 익숙하지만 설렜다.

 

 

 

대웅전의 출입구인 자하문과 그곳으로 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 현존하는 유일의 신라 다리라고 한다. 물론 복원공사 때 난간은 새로 했다고 한다. 다리 자체가 문화재적 가치(국보 제23호)를 지니기 때문에 아쉽게도 출입할 수는 없다. 외국 주요 인사가 불국사를 방문할 때마다 이 계단을 이용하여 자하문을 통과하던데, 다시금 일반인에게도 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재도 현재의 삶과 함께 해야 하고 우리가 남기는 흔적 역시 역사의 한 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 보호가 중요하다면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계단은 계단으로 사용될 때에 의미가 있을 테니까.

 

 

유홍준 교수의 영향 탓인지, 많은 관광객이 청운교 밑의 아치를 사진에 담고 있었다.

 

 

 

당간지주.

 

 

단체 사진 찍은 초등학생들. 나도 엊그제 여기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범종각 사진들.

 

 

극락전.

 

 

극락전 영역과 대웅전 영역을 가르는 벽. 직선의 미학과 불규칙성의 미학이 혼재된 미묘한 느낌이 있다. 많은 관람객들이 거대한 '건물'들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 한 외국인(사진 속 인물)은 이 지나치기 쉬운 '디테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술품의 아름다움은 거대 풍경 속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가치는 디테일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저 뒤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웅전이 나타난다.

 

 

아쉽게도 석가탑은 보수공사 중이다.

 

 

다보탑. 기단 위에 놓인 돌사자가 보인다(아래 사진). 원래 4기였다고 하는데, 나머지는 현진건에 의하면 일본의 한 음식점으로 반출되었다고 한다. 남아 있는 돌사자의 위치마저 원래의 위치와는 다르다. 4기의 돌사자는 양 사방 모퉁이에 놓여져있었다고 하니 저 남아 있는 돌사자도 모퉁이로 옮겨져야 할 것이다.

 

 

 

대웅전 내 불상.

 

 

불국사의 풍미는 이 바랜 색들이 자아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서울의 광화문을 바라보며 아쉬웠던 부분을 이 색이 채워주는 것 같았다.

 

 

관음전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어린이들은 뭐가 급한지 마구 뛰어오른다. 이런 모습들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불안할 따름이다. 유물의 훼손 우려도 우려지만 일단 어린이들이 다칠까봐 걱정이었다. 한 백발의 일본인 관광객은 "칸코쿠노 각세...(한국 학생...)"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수학여행의 참 뜻을 헤아려 아이들이 수 천 년의 역사를 좀 더 경건하게 배울 수 있도록 해야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곳은 '불국'이 아니던가.

 

 

 

조용한 비로전. 나는 다시 극락전으로 내려간다.

 

 

극락전으로 다시 돌아온 까닭은 이 '극락전 복돼지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찰 안에 놓은 황금돼지가 인상적이었다. 근엄한 사찰 안에서 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었다.

 

 

사진 따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촉감들을 느끼며 다녔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의외의 현장(?)도 목격하게 된다. 불국사 벽에 못이 박혀있다.

 

 

일단의 외국인 관광객들. 열심히 '불어'로 설명하고 있는 가이드 역시 외국인이다. 한국의 유적을 외국인이 설명하고 있는 모습도 나름 색달랐다.

 

이렇게 나의 짧고 짧은 당일치기 여행은 끝났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둘러본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음 번에 찾아 다시 디테일한 부분들을 짚어봐야겠다. 나는 바로 보문단지의 시상식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