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 공포증
이것은 소설의 내용과 무관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대면했을 때의 느낌 말이다. 이 책이 내 손으로 들어왔을 때 약간의 공포감을 느꼈다. 표지 디자인 때문이었다. 작고 검은 점들이 여럿 모여 표제(='핸드메이드 픽션')를 에두르고 있는 모양이 내 속에 잠재되어있던 무언가를 건드렸던 것이다. 범박하게 그런 증상을 '환 공포증'이라고 부른단다. 물론 내가 심각한 '환 공포증'의 소유자는 아니다.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피파개구리(Surinam Toad)를 보며 혐오감을 느껴보긴 했지만, 그건 정상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쾌함을 느낀다고 하니까 말이다. 여담이지만, 환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창가에 맺힌 빗방울만 보아도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느꼈던 그 '이상 야릇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록작 8편을 모두 읽고 난 지금, 나는 그것이 일종의 '징후'였다고 믿는다. 8편의 작품은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이른바 '판타지'(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판타지'는 '로망스 Romance'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성격의 작품(「나무의 죽음」)도 있고, 마치 로망스 시대의 전기수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작품(「자정의 픽션」)도 있고, 알레고리적 성격의 작품(「갈라파고스」), 메타피션(「나는 『부티』의 천 년을 이렇게 쓸 것이다」) 등 제각기 소설이 취할 수 있는 다양다종한 방법론이 적용되어 있다. 이러한 소설적 시도를 상징한다고 여겨지는 게 바로 표지 디자인과 각 작품 별 표지의 디자인이다. 표지 디자인은 상기한 바 있기 때문에 차치하고, 개별 작품 별 표지를 살펴보면, 마치 미니멀리즘 회화를 연상하게 한다. 첫 작품에는 작고 검은 점이 하나 찍혀 있고, 둘째 작품은 두 개의 점, 셋째 작품엔 세 개의 점..... 하는 식으로 나름대로 구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박형서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시인 권혁웅의 해설에 이르러서는 흰색 점으로 반전되어 하나로 그려진다.
2. 박형서 프로젝트
이것은 아마도 점차 윤곽이 드러나는 이른바 '박형서 작품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미부여해본다.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만, 표지 디자인에서 강렬한 인상을 느꼈던 나로서는 낯선 세계를 그렇게 해석한다. 상기 한 바와 같이 「핸드메이드 픽션」의 수록작들은 하나 같이 새로운 작법를 시도하고 있다. 사실 이 시도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선 한국 작가들이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편의 상) 이광수로부터의 한국 근대 문학을 상정할 때, 지난 20세기는 서구에서 들어온 '근대 문물'로서의 소설을 이해하고 한국적 토양에 적용시키는 일련의 역사가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야흐로 21세기를 맞이하자 한국 소설은 그 전 세기와는 다른 또다른 면모를 과시할 때가 되었다. 2000년 등단한 김애란 이후 수많은 작가들이 그런 시도를 해왔고, 박형서 역시 그런 고뇌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하, 박성창) "박형서는 어느 작가보다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깊이 성찰한다. 재기 발랄한 상상력으로 박형서는 어느 작가보다 이 문제의식을 깊이 있게 성찰하면서, 명민하고 재기 발랄한 상상력으로 탐색의 결과물을 독자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소설 가운데 하나인 「자정의 픽션」에서 볼 수 있듯이 ‘자정’이라는 시간대 혹은 용어는 이 소설가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정이란 하루의 끝이자 시작을 의미한다. 작가의 말을 빌면 “자정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얕은 꿈을 꾸거나 혹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고단하게 중얼거리는 시간이다.”작가는 ‘자정’의 이미지를 근대의 산물로서 소설에 대한 성찰에 적용하여 근대 이전으로 돌아가 그 ‘시원’에서 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 혹은 근대 ‘이후’에 씌여질 소설의 미래에 관한 성찰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마치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가 『픽션들』에서 소설의 의미를 천착하는 일종의 메타픽션을 썼듯이 박형서는 오늘날 한국문학에서 소설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소설 ‘이전’의 소설 혹은 소설 ‘이후’의 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다양한 서사적 모험을 감행한다. 그는 유머, 철학, 문학사, SF, 정신분석, 과학, 에세이 등의 여러 담론들을 섞고 분류하고 재배치하여 새로운 세기의 하이브리드 소설을 창조한다. 소설이라는 근대의 산물은 이제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예전의 운명을 다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할지 모른다. 박형서의 소설에는 서사로서의 문학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거대한 기획이 숨어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소설이 쌓아올린 관습적인 기호들의 체계를 벗어나 ‘손의 감각을 따라 지어진’ 기호들의 독특하고 새로운 배치가 요구된다. 박형서가 이번 소설집의 제목을 ‘핸드메이드 픽션’이라고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소설의 ‘자정’ 너머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소설의 미래를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나가는 소설가의 고투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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