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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사각형/Advertising

지자체 슬로건이 공허한 이유

스크랩 From 중앙SUNDAY 칼럼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회장 | 제352호 | 20131208 입력 





‘로맨틱 머시룸(낭만적 버섯)’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한국 식재료를 미국에서 홍보한 캠페인에 대해 중앙SUNDAY가 좌담회를 마련했다(11월 3일자 게재). 필자를 포함한 주한 외국인 언론인과 홍보 전문가들은 할 말이 정말 많았다. 11월 24일자 중앙SUNDAY에서 지적한 한국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의 영어 슬로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 지자체 슬로건이 조금 나은 건 아마도 비웃음보다는 무시의 대상이 됐다는 정도 아닐까. 한국을 아끼는 외국인으로선 안타까운 노릇이다.


좋은 슬로건이란 뭘까. 슬로건이란 언어로 표현하는 ‘포지셔닝(positioning)’인데, 해당 기업·기관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컨셉트를 압축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짧기 때문에 얼핏 쉽게 생각할 수 있고, 그래서 많은 상사는 자신들이 슬로건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선택이 끝난 후에 그 영어 슬로건이 영어로 말이 되는지 외국인에게 검증만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지자체나 기업에 딱 맞는 슬로건을 만드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략이 부재한 지자체라면 슬로건을 만드는 건 더 어렵다. 정치 입문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가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고 가정해보자. 시장직은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그에게 꽤나 좋은 발판이 될 터다. 이런 도시의 슬로건은 전략 부재 슬로건의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난 ‘하이! 서울’이 떠오른다(아마도 이 상상의 시장은 자신의 사진까지 박아서 슬로건 홍보 포스터를 제작할 것이다).


반대로, 어느 대도시의 시장이 슬로건을 만들기 위해 먼저 여론조사를 하고 시민들이 도시에서 뭘 가장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작업부터 진행한다고 하자. 그 시장은 아마도 장기 전략을 세워 공원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한강변을 정비할 것이다(사실 청계천 복원사업도 이런 일환이었을 거다). 이 비전에 근거해 슬로건을 만들었다면 아마 ‘서울:그린 시티’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그린 시티? 왜 블루나 에버그린은 안 되는데?’라는 비난도 나올 테지만 그런 중얼거림은 포인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슬로건은 언어에 관한 것이 아니다. 비전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슬로건을 보는 이들이-시민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이나 관광객을 포함해-우리의 도시나 기업을 더 높은 목적의식을 갖고 봐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슬로건이란 해당 도시의 현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시 정부가 그 도시를 미래에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싶은지를 반영해야 한다.


한국 지자체들의 슬로건이 안타까운 또 하나의 이유는 다른 슬로건을 그대로 베낀다는 점이다. “우린 창의력이 없어요”라고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이내믹 부산’은 ‘다이내믹 코리아’ 슬로건의 카피다. 40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고작 이런 슬로건을 가져서야 될 것인가. 기사에서도 지적된 ‘비바! 보령’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스페인어 감탄사인 ‘비바’를 쓴, 공허한 슬로건이다. 만약 보령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투우 축제라도 개최한다면 얘기는 좀 달라질 테지만.


모든 슬로건이 나쁘진 않다. 경기도 안성의 ‘안성: 시티 오브 마스터스(City of Masters: 장인의 도시)’는 ‘안성맞춤’이란 말을 십분 활용한 훌륭한 슬로건이다. ‘플라이 인천(Fly Incheon)’도 인천국제공항이 연상되기에 괜찮은 편이다.


가장 유명한 도시 슬로건인 ‘I♥NY’은 1980년대 초, 뉴욕시가 뉴욕의 미래를 구상하며 만든 슬로건이다. 당시만 해도 뉴욕 시민들은 공격적이고 불친절하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지금 뉴욕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됐다. 한국의 도시들은 각자의 매력과 비전을 각자에 맞는 독창적 방법으로 알려야 한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한창 떠오르고 있는 지금이 바로 기회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2398

마이클 브린 에든버러대 졸업 후 워싱턴타임스 서울특파원으로 일하며 『한국인을 말한다』 등을 썼다. 현재 홍보회사 인사이트커뮤니케이션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