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 전 하루를 기억한다. 그날은 유독 눈이 내리는 날이었고, 지하철은 두 갈래의 방향을 향해 틈을 벌리고 있었다. 어느 한 쪽이든 서로의 반대 방향으로 달릴 수밖에 없는 운명의 선로였다. 그 위에서 나는 한없이 울고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 세간에서, 군 입대 전 남자친구 때문에 여자가 울면 헤어지고 만다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한도 없이 울었다. 내 앞에서 끝끝내 참던 눈물을 지하철 문이 닫히자마자 소리가 꺽꺽 울음 삼키며 울던, 그 누군가를 기억한다.
여자는 예민하고, 자신의 상대에 대해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상처를 보듬으려 했던 사람이었다. 작은 체구의 여자였지만, 속이 깊은 여자였다. 여자는 군 생활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썼다. 나는 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서로를 못 보는 그 무수한 시간을 견디며 '매일' 편지를 쓴다는 것이 고된 일이라는 걸. 그래서 고마웠다. 불가피하게 답장을 하지 못 하더라도 여자는 편지를 썼다.
어느 날은 편지에서 향수 향이 났다. 그녀가 뿌리던 향수였다. 나는 의례적으로 '향이 참 좋다.' 지나 듯 이야기 했는데, 그걸 잊어버리지 않고 편지지 한 끝에 향수를 뿌렸던 것이다. 나는 그 향이 아닌 그 마음에 흡족했다. 편지는 관물함 속 한 자리를 차지하며 다음 휴가 때까지도 향기를 뿜어냈다. 관물함을 열 때마다 느꼈던 어떠한 감정이란 다시 생각하기에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였던 거다. 300km나 떨어져 있는, 차비가 왕복 10만 원이나 나오는 그곳을, 여자는 계절마다 찾아왔다. 나는 자주 오는 것이라 여겼지만 여자는 매번 "자주 못 와서 미안하다."했다. 그런 여자 앞에서 나는 송구스러웠다. 어찌 생각하면 무심한 내가 배려하고 사랑하게 만든 건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소소한 것에 흡족해하고 소소한 것에 큰 감동을 느끼던, 그런 여자로 기억한다. 사랑은 계산되는 것도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닌 우선 사랑하고, 우선 배려하고, 나의 반을 덜어주는 것이라는 걸 여자는 말 없이 실천했던 것이다. 그것이 도리어 사랑을 더 강하게 한다는 걸, 알게했다.
*
눈이 내릴 것이다.
모든 것은 하얗게 지워질 것이다.
그 뒤에 올 것을 기다리며.
*
홀로 무수한 거리를 걸으며,
나는 차가워진 사람들의 거리에 대해 생각했다.
인드라망이라 했던가.
그 사람들, 제각기 서로 비추며 연결되어 있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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