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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사각형

루퍼, Looper, 2012

 


루퍼 (2012)

Looper 
8.3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조셉 고든-레빗, 브루스 윌리스, 에밀리 블런트, 폴 다노, 자니 영 보쉬
정보
SF, 액션 | 미국 | 119 분 | 20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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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 Looper>는 잘 짜여져 있다. 각본을 감독인 라이언 존슨이 썼다고 하던데, 훌륭한 감독이라는 생각이다. 서사가 안정된 까닭에 의심 많은 관객이라도 설득 당할만 하다. 툭툭 던져놓은 요소들은 반드시 뒤에서 무언인가로 쓰인다. 실패한 SF영화의 까닭의 공통적 특징이 바로 서사의 부재 혹은 누락이다. 관객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현란한 CG와 액션에 침 흘리며 그저 생각 없이 영화가 시키는대로 따라가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재능없는 감독의 바람일 뿐이다. 그러나 라이언 존슨은 루퍼를 통해 관객을 충분히 설득하고 있다. 현란한 CG나 액션이 거지반 없음에도 묘한 여운까지 남긴다. 물론 CG나 액션 본위의 관객은 분명히 있다. 그런 관객이 잘못된 건 아니다. 서사가 있어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 아니듯, 그저 즐기기 위해 보는 영화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취향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루퍼>에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감독이 각본을 쓰며 서사에 신경 쓴 것은 충분히 읽히지만, 완성도를 위해서인지 억지스럽게 짜맞춰놓은 부분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염력. 영화 도입부에서 "인구의 약 10%는 염력을 가진 돌연변이다."라는 복선을 깔아 시드(Pierce Gagnon 분, 꼬마야 너 연기 참 잘 하더라.)가 레인메이커의 어린 시절로, 강력한 '염력'을 가졌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사실 구성을 위한 구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약 감독이 좀 더 고려했다면, '염력'을 단순히 '시드'의 전사로서 활용할 뿐만 아니라 그 '염력' 자체가 왜 '인구의 약 10%'까지나 갖게 되었는지 설명했을 것이다. 그 이외에도 구성을 위한 구성, 도식적 배치가 눈에 밟히는 곳이 몇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영화는 안정된 서사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안정된 서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할 여지를 만든다. "그 길은 시간처럼 흐르고 흘러 돌아온다. 그래서 난 미래를 바꿨다." 영화의 모든 서사와 메시지는 이 대사 하나로 응축된다. 내게 <루퍼>가 마음에 든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지점이다. 여타의 시간 여행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는 '운명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조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 미래를 바꾸지만, 어쨌든 영화는 미래의 조가 과거의 조가 행한 모든 기억을 '조금 늦게 기억'하도록 함으로서 결국 운명은 '지금의 나'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 메시지가 좋았다.

 

화려한 CG나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그다지 권할 수 없는 영화다. 그러나 찬찬히 영화의 요소요소를 퍼즐처럼 맞춰보고 싶은 관객, 시간과 운명에 대해 깊진 않아도 잠깐이나마 생각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물론 SF는 SF이니만큼 깊고 심오한 철학 같은 건 기대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