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새해 1~2월 간 히치콕의 작품세계의 얼개를 다시 한 번 훑어 볼 요량이다. 워낙 다작의 감독인지라 작품 모두를 감상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본 <새 The Birds> 이외의 작품은 Time Out의 Hitchcock: the directors' cut 기사를 토대로 리스트를 만들어봤다(이 기사에서 <새>를 추천한 감독은 의외로 없다). 순서는 <서스피션 Suspicion>(1941), <오명 Notorious>(1946), <열차 안의 낯선 자들 Strangers on a train>(1951), <이창 Rear Window>(1954), <현기증 Vertigo>(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1959), <사이코 Psycho>(1960), <마니 Marnie>(1964) 이상 8편 순이다.
The Birds, 1963
<새 The Birds>는 1963년 작이다. 이 작품을 이번 계획에 서두에 둔 까닭을 설명하라면 하지 못 할 것이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무작정 히치콕 영화에 달려들었기 때문에 사전 계획이라는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 DVD 목록에 히치콕을 검색하고 가장 상위에 노출된 작품이 다름 아닌 <새>였을 뿐이다. 아무런 선입견이 없어 무작위로 고른 작품이니, 더욱 외부의 권위주의(예를 들면 이른바 '전문가 평' 같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결론적으로 잘 골랐다는 생각이다. 그의 출세작이자 평론가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시작한 작품이라니 말이다.
<새>는 1952년 작 대느피 뒤모리에의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히치콕 감독은 1961년 8월 18일 캘리포니아 북부 몬터레이만 지역신문의 한 기사를 보고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그 기사가 영화 내용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수 천 마리의 '미친 바다새'들이 해안지역에서 목격되었는데, 검은슴새(sootyshearwaters)라고 알려진 그 새들은 먹었던 멸치들을 토해내고 사방의 물체에 마구 돌진했으며 무더기로 폐사했다고 한다.
히치콕은 이 지역의 근방에 살았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본 뒤 그는 신문사에 더 많은 정보를 요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히치콕은 이 자료를 토대로 실제 사건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새들의 인간 공격'을 영화에 담았다. 최근 그 당시 새들이 미처날뛴 원인이 "독성 플랑크톤 슈도-니치아(Pseudo-nitzschia)" 때문인 것으로 발표한 연구진은 당시 새들이 사람을 공격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건물이나 벽 등에 부딪힌 것이며 이는 새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관련기사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451541).
<새> 속의 '새'는 해당 영화의 주요한 오브제로서 강력한 상징적 의미를 담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사람을 공격하거나 혹은 죽인 사실이 없는데, 그것을 영화화하면서 사람을 공격하게 만든 것을 역추적한다면 영화의 실마리가 조금은 풀릴 것 같다. 물론 극적 긴장감의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인간 공격'이라는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이라면 지나치게 히치콕의 영화를 가볍게 본 것이지 않을까? 당연히 주제의식을 지시하고 있을 소재와 상징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새> 속의 '새'는 대체 무엇이고, 그것 자체와 그것의 인간 공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아무래도 그것이 여자의 직감, 본능, 질투, 이중적 심리 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새들이 주로 공격하는 대상이 여자나 여자 아이라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영화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한 여자들의 복잡한 심리가 그 기저에 내내 흐르고 있다. 시각적으로 '새'의 무리가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사실 그보다 불안 심리를 조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영화 속 여자들의 심리인 것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결국 여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여자들의 심리는 지극히 이중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어머니의 경우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없다. 물론 명확해서도 안 된다. 명확하다는 건 도식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일 테니까 말이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어둡고 침울하고 신경쇠약적인 분위기만으로 영화는 그 기능을 충분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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