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 출판사의 인터뷰 시리즈는 재밌다. 인터뷰이가, 인터뷰이를, 인터뷰해서, '소설' 비슷하게 책을 낸다. 짐작하셨다시피 인터뷰이의 목소리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인용될 뿐이다. 하지만 인터뷰어의 생각에 인터뷰이를 취사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은 결코하다. 책은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인터뷰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인터뷰어의 생각이 인터뷰이의 주관을 왜곡하지 않는다. 사관과 역사의 관계에 비유해도 좋을까. 기록하는 자와 기록 당하는 자 어느 한 쪽만이 월등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인문학이다
각설하고- <인문학으로 광고하다>(2006)년부터 TBWA KOREA 전문임원으로 재직 중인 박웅현을 인터뷰'이'로 하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곧 표제에 드러나 있다. 인문학으로 광고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무엇이고, 광고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설핏 느낌이 올 것이다. 이 책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말이다. 책은 이렇게 쓰고 있다.
박웅현은 언젠가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광고인이 되기 위한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적인 소양입니다."
박웅현은 처음 만난 날에도 이 말을 했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때 창의력이 필요한 거고 그 창의력을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중요합니다."(p.50)
이에 대해 인터뷰'어' 강창래는 부연한다.
공감이 된다. 인문학이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구체화된 결과물이고,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예술이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p.50)
박웅현은 말한다. "히까닥"하기만 하는 광고는 광고가 아니다. 히까닥이라는 표현이 사실 나는 금방 와닿지 않았는데, 책에서는 그것이 광고계에서 쓰이는 일종의 은어라고 설명한다. '튀는', '엽기적인'이라는 뜻이란다. 맥락 상 흥미 본위 자체가 목적인 광고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좀 더 화려하거나, 좀 더 선정적이거나, 좀 더 기괴하고, 좀 더 독창적인 어떤 광고를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박웅현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사람을 도외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의 저자가 역설한 바와 같이 '인식'에의 싸움이다. 그런데 그 '히까닥'한 광고는 자칫 이 인식으로부터 멀어지기 쉽다. 멀어지면 공감을 얻지 못하고, 공감을 얻지 못한 광고는 광고로서의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 인식 즉, '사람'을 가장 잘 가늠하는 잣대가 '인문학'이다. 박웅현이 광고에 있어서 '인문학'을 재차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맥락 가운데에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속담이 아니라 카피다!
이쯤에서 다시 박웅현에 대한 원론적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나는 그러나 광고인에 대해 출생년도나 학벌, 출생지, 부모 따위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가가 소설로서 평가 받는다면 광고인은 광고로서 평가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웅현'은 참 설명하기 용이한 광고인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만든 광고 중에 가장 잘 알려져있다고 생각하는 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카피를 사용했던 그 광고다.
종종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속담처럼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방금 밝힌 바와 같이 이 카피는 박웅현의 '작품'이다. 창작되었다는 말이다. 사실 광고 카피가 대중의 내면 깊숙이 침투해 아무런 거리낌을 갖지 않고 자리잡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일 거다. 그러나 박웅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것이 당초에 속담인지, 경구인지도 구분 못 할 경지로까지 대중의 인식을 장악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이 부분을 깨달았을 때, 나는 얼마나 순진한(?)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까지 돌이켜보았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이 책은 광고인 박웅현의 광고 철학이 담겨 있다. 인문학을 기본으로 하여 사람을 이해하는 광고. 그런 광고를 박웅현이 하고 있다고 이 책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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