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세 번째 청소년극 '빨간 버스'를 보고 왔다. 리뷰는 연합뉴스 것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갈음한다. 소제목만 추가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소소한 재미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실망스런 연극이었다는 거다.
국립극단이 제작한 첫 창작 청소년극
인물 성격 모호하고 작품 혼란스러워
주인공 세진. 고교 2년생으로, 미혼모다.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1) 박근형 작/연출이라더니
국립극단이 신작 청소년극 '빨간 버스'를 용산구 서계동의 소극장 판 무대 위에 올렸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를 통해 제작한 세 번째 청소년극이다. 예전 두 편, '소년이 그랬다'와 '레슬링 시즌'은 외국작품을 번안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빨간 버스'는 창작극이다. 국립극단이 제작한 것이며, 박근형 연출이 쓰고 무대화한 작품이니만큼 관심이 컸던 작품이다. 그러나 지난 22일 낮 소극장 판에서 있었던 이 작품의 언론 시연 공연은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2) 핵심 줄거리는 이렇다
'빨간 버스'는 별거 중인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사는 고교 2년생 세진의 이야기다. 세진은 남몰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 세진은 학교에서 왕따나 불량학생으로 인식된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성적도 상위층인 모범생이다. 세진은 아빠가 보내주는 적은 돈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아기를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어느 날 상점에서 분유를 훔치다 적발되면서 그간 숨겨온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드러나게 된다. 학교 교사들은 자기 보호, 학교 보호에만 급급해 속전속결로 세진을 자퇴시키는 쪽으로 상황을 몰아간다. 주변 인물들은 세진의 불안감과 고통을 이해하기보다는 오로지 아기의 아빠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한다.
무대 풍경
3) 박근형 연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대 연출
이런 이야기가 바닥에 X자형으로 교차하는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는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무대는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세진의 마음상태를 나타내는 듯한 느낌이다. 무대에는 고정된 장치는 없다. 아주 단순한 걸상 형태의 목제 도구 넷을 흩었다 모으면서 교실의 의자와 책상, 교무실의 집기, 술집 테이블 등을 만들어낸다. 박근형 연출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이 대학로 소극장에서 최저예산 연극을 만들면서 흔히 사용하는 도구며 도구 연출 기법이다.
연극은 17세 삼총사 소녀 세민·정민·봉련이 무대에 등장, 어두운 색조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초반에 무대 한 편의 벽면을 칠판처럼 사용해 수업 중인 교실의 모습을 그려낸 장면의 무대 연출이 인상적이다. 교사들은 칠판 앞에 서서 엉뚱한 얘기를 해 대고 있고, 학생들은 칠판 반대방향으로 앉아 있다. 극 중 강선생 역의 강지은 배우는 뻔뻔스러운 교사의 모습을 능청스러운 연기로 해 내며 웃음을 자아낸다.
4) 상처 받은 세진은 결국 버려진다?
그러나 작품은 전반적으로 좀 혼란스럽다. 청소년극이니 만큼 청소년들이 겪는 심리적 불안감과 아픔이 극적으로 묘사되면서 상처의 치유나 위로의 느낌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등장인물들이 쏟아내는 대사의 상당 부분은 자기욕망에만 철저한 철없는 부모, 한심한 교사, 부조리한 교육환경이나 사회를 비판하는 데 집중돼 있다. 신문이나 방송 또는 인터넷을 통해 익히 들어온 얘기다. 사실 작가의 의도는 제목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빨간 버스'는 '미친 듯 달리고 있는 버스'다. 즉, 우리 사회다. "그 속에 탄 우리는 내리지도 못하고 내릴 수도 없고 다 빨갛게 타들어가고 있어. 우린 언제고 그 버스 안에서 다 불타 죽을거야" 세진은 극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얘기한다.
5) 캐릭터의 모호함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주인공인 세진부터 그렇다.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세진이 여러 사람과 성적 관계를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가 겪는 고통에 진정성이 있는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인물 성격의 모호성은 배우의 연기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음악선생의 인물 설정도 그렇다. 그는 세진이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세진에 대한 사랑의 말을 털어낸다. 그러나 그는 그 후 교사들이 모여 세진에 대한 일방적인 자퇴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세진의 남자친구 동원이 '샌님이고 굵은 테 안경을 쓴' 형을 일부러 자전거에서 떨어뜨려 부상당하게 하는 이유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6) 인물의 비중 배분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
세진과 삼총사를 이루는 친구 정민과 봉련의 대사량이 전체적으로 그리 많지 않은 등 역할이 작은 것도 청소년극으로 볼 때는 좀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다. 대본이 전체적으로 정리가 잘 안 된 듯한 인상이 있다. 박근형 작가가 과거 여러 작품의 신작 초연 공연 때 초기에 내용이 정리가 안 된 상태로 출발했다가 공연이 진행되면서 인물의 성격이나 이야기구조가 명료해진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빨간 버스'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을 기대해야 할 것 같다(그러나 내가 본 지금까지도 이러한 부정적 요소는 여전했다).
◇ 청소년극 '빨간 버스' = 만든 사람들은 ▲작·연출 박근형 ▲조연출 이은준 ▲무대디자인 박상봉 ▲조명디자인 김창기 ▲작곡 및 음악 아트모스피어(이충한·정재환) ▲분장디자인 김숙희 ▲의상 및 소품 강민지.
출연진은 강지은·곽성은·이은희·이봉련·김정민·신사랑·안준형·김동원.
공연은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내 소극장 판에서 다음 달 16일까지. 공연문의는 ☎1655-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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