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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공연&전시

[콘서트] 계사년의 끝자락, 홍경민의 조금 시끄러운 콘서트와 함께 하다


12월 29일, 한 해의 끝을 '조금 시끄'럽게 보내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베니건스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베니건스 빵을 나눠주는 행사인 모양이다. 봉지 안에는 빵과 함께 쿠폰 몇 개가 들어있었다. 베니건스 유니폼을 입고 빵을 나눠주던 여자 분은 내게 두 봉지를 쥐어준다. "두 갠데요?"하는 제스쳐를 보였더니 여자 분이 눈짓만 찡긋한다. "사람이 많으니 정신 없나 보네. 나야 좋지!"했다. '밀가루다ㅋㅋ'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어린 애처럼 친구에게 "난 두 개다!" 자랑을 했다.


한 해의 끝은 역시 조금 시끄러워야 하는 것 같다. 축제와 같이. 홍경민의 2013년 연말 콘서트 <2013 홍경민의 '조금 시끄러운' 연말 콘서트>처럼 말이다. 양력으로는 이미 지나간 2013년이지만 음력으로는 아직 계사년이지 않던가? 늦은 포스팅도 포스팅이지만 연말의 분위기는 쿨하게 놓아주기 싫은 구석이 있다. 홍경민과 함께 한 '조금 시끄러운' 콘서트는 그러므로 충분히 즐거웠다.


홍경민은 사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콘서트를 다녀오고 나서는 역시 "열심히 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공연 2시간 반을 "방년 38살이 하기에는 버거운 게 사실"이지 않던가. 게다가 콘서트 진행 상 으레 끼어 있는 '커플 이벤트'는 그에게 얼마나 고역일까. 그도 스스로 커플 이벤트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아씨, 내가 왜 이런 걸 해주고 있어야 돼!" 외롭긴 외로운 모양이다. "그거 알아요? 다들 힘든데 콘서트 왜 하냐고 그래요. 그래도 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콘서트를 해야 한 해를 마무리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그래요. 그거 알아요? 31일까지 딱 공연인데 그거 끝나고 술 한 잔 하고 딱 잠들었다가 1월 1일 아침에 혼자 눈 뜨는 그 공허함을?" 그 말에 관객들은 웃었지만 그는 분명히 진심이었다. "내년(2014년) 추석까지 소식 없으면요, 저 집에서 큰 일 있는 줄 아세요?" 공연 말미에 한 그 말에 그의 절박함이 담겨 있는 듯했다.


어쨌든 공연은 예정되었던 2시간을 넘겨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공연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우리 같은 사람에게 시간 맞추는 건 껌이죠. 힘들어요. 앵콜이랑 퇴장이란 구분하는 법 알려드릴게요. 간단해요. 가수가 퇴장했는데 공연장 불이 안 켜지면 앵콜입니다. 불이 켜지면? 얄짤없이 나가시는 거예요?" 2시간쯤 진행되었을 때 그 나름대로 우리에게 쥐어준 팁이다. 그는 정말 2시간 30분을 딱 맞춰 끝났다. 소월 아트홀 공연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아서 그가 헉헉거리고 땀을 뻘뻘 흘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프로는 프로인 게 토크 꼭지 때는 헐떡여도 노래를 부를 때는 목 한 번 쉬지 않고 부른다.


공연 말미쯤 홍경민은 눈 소식을 전한다.

"밖에 눈 온대요. (관객들의 오오-) 좋아요? 순수한 마음들이 남아 계신 거야. 근데 우리 공연하는 사람들한테는 눈이 안 반가운 거 알아요? 왜냐면, 눈 오면 올 사람도 안 와. 저기 중간중간 빈 자리 슬프기는 한데."


그는 공연 중 토크 내내 자신을 "공연하는 사람"으로 지칭한다. 문득 무대 위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했던 것 같다. 그에게 무대는 꿈의 달달함과 현실의 질척함이 뒤엉켜 있는 공간인 듯싶었다. 게스트도 없이 2시간 반에 걸친 <조금 시끄러운> 콘서트는 마치 1인 토크쇼처럼 보였다. 대중 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모든 게 부드럽게 흘러갔다.


<조금 시끄러운> 콘서트를 마치고 나온 어둑한 왕십리의 거리.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막 빠져나왔을 때 느껴지는 그 착- 가라앉는 느낌이 괜찮았다. 분식을 좋아하는 나는 허기가 져서 같이 간 친구에게 "분식 어때?"하자 흔쾌히 가자고 한다. 근처가 직장인 친구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근처 국대 떡볶이로 안내했다.


좋은 공연 보여준 홍경민 씨에게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