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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공연&전시

[연극] 권력, 그것 참 유감입니다. - <권력유감>(대학로극장)

 

 

권력유감. 그 제목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권력, 정말 유감이지. 감추려 한다고 감춰진다면 그것은 진실인가?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 권력은 무너지기 마련. 그 권력, 사상누각이지."

 

제법 철학적으로 지싯거린 나는 대학로를 찾는다. 연극 <권력유감>을 보기 위해서다. 오늘 포스팅은 이 <권력유감>에 대한 소소한 감상평이다.

 

#1. 대강의 줄거리

 

가진 거라곤 '불알 두 쪽'과 '주먹' 뿐인 덕구가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조직에 들어가 꼼꼼한 일처리로 보스의 신임을 받는다. 이후 덕구는 능력을 인정 받아 2인자의 자리에까지 오르며, 더 나아가 보스의 뒤를 이어 1인자의 자리까지 오른다. 덕구는 드디어 자신이 바라던 '최고의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 된 것이다.

 

덕구를 보스로 모신 조직은 파죽지세로 그 세를 불린다. 다른 조직을 흡수해가며, 그 영향력을 기성의 권세가 즉, 정치인, 법조인, 기업인 등과의 카스텔 구축 위해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덕구는 악몽을 꾼다. 상대조직원에게 피습을 당하는 꿈이었다. 이 꿈을 꾼 이후, 덕구는 '발기부전'이란 병을 얻는다. 혼자 속앓이를 하며 나아질 것을 바라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다. 결국 그는 경호원을 따돌리고 홀로 비뇨기과를 찾는다.

 

그런데 그가 찾아간 비뇨기과의 의사는 다름 아닌 '여자'다. 최고의 권력자가 최고의 수치를 '여자'에게 보이는 것이다. 이곳에서 덕구는 '과도한 스트레스성 발기불능'이라는 진단을 받지만 그저 그는 더욱 의기소침해질 뿐이다. 보스가 흔들리자 조직이 흔들린다. 그리고 다시 비뇨기과 의사를 찾아가는데...

 

#2. 왜 하필 '발기불능'인가?

 

연극의 창작의도은 분명히 '우리 사회를 억누르는 권력, 그 허상을 풍자하는 것'이다. 말만으로도 무겁다. 사회 도처에 가시적.비가시적으로 만연한 권력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벼울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연극의 제목도 그렇다. <권력유감>. 마치 사자성어처럼 한자어 '네 개'('4개 강 같은 평화'가 떠오르기도...)로 이루어진 이 신조어가 무겁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 것도 모르는 관객을 의뭉스러울 수밖에 없다. "재미 없을 거 같은데?"

  결론부터 말하자. 연극 <권력유감>은 재밌다. 권력을 풍자하는 방식부터가 고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방식은 지극히 세속적이다. 일상적이다. 왜냐하면, 연극은 다름 아닌 '발기불능'을 권력 풍자의 장치로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풍자할 수 있는 연극적 장치는 무수히 많은 것이나, <권력유감>이 '발기불능'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_ '권력'='남근'='아버지(The name of the father)' 

 

많은 비평가 및 학자들에 의해 권력은 흔히 '페니스'에 비유되어 왔다. 동시에 부권(라캉)이다. 쉬운 말로 풀이하자면 전자는 '남근'일 것이고, 후자는 '아버지'일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 이래로 권력이란 강한 아버지의 인상이었으며 그러므로 남근적이었다.

 

이런 이론가들의 주장에 근거하자면 연극 <권력유감> 속의 '발기불능'이란 장치는 예사롭지 않게 된다. 그저 우스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풍자'가 되는 것이며 그 안에 '칼날'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최고의 권좌에 오른 '권력자'가 '발기불능'이 되는 상태, 그리고 그것을 진단하는 비뇨기과 의사가 '여자'라는 사실은 고도로 계산된 메타포라는 느낌이 들었다. 덕구의 '발기불능'이란 그저 성기능 불구의 상태가 아니라 권력의 허울성, 붕괴(전조) 등을 상징하는 것이며 '여의사'의 존재란 바로 이 권력의 중심 이동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나는 읽었다(심지어 덕구는 남성들의 세계, '조폭'의 보스이지 않는가.).

 

 

 

#3. (play DB 제공 자료) 우리 사회를 억누르는 권력, 그 허상을 풍자하다

- 연극 <권력유감(權力有感)>

_ 2012년 새로운 출발선에서 선택한 극단 대학로극장의 신작
연극 [권력유감]은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권력의 불합리로 인해 점점 억압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권력은 불합리하며, 그 불합리한 권력의 폭력으로 인해 자유와 민주는 옥죄어 지고 권력을 쥔 자들에 의해 재편되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 형태를 풍자를 빌어 꼬집는다. 이는 진정한 권력은 무엇이며 어떤 형태로 우리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권력의 본질을 파해쳐 보고 나아가 그 본질적 의미가 그대로 우리 사회에 투영되기를 희망하는 제작진의 의도이다.
2012년 새로운 출발선에서 선택한 연극 [권력유감]!!!
권력에 대한 통쾌한 풍자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이 사회를 향해 발언하려 한다.

_ 서른 다섯 번의 장면전환, 역동적인 극진행.
이번 공연은 총 서른 다섯 번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영화와도 같은 많은 장면변화는 그러나 장면전화 시 움직이는 배우들의 치밀한 동선계산과 깔끔한 움직임으로 극의 긴박감을 도운다. 대소도구로 구성되는 무대배경은 배우들의 신속한고 정확한 움직임 속에 매 장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며 암전 시 무대전환이 이루어 졌던 기존의 연극과는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전환 자체를 하나의 장면으로 설정에 관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할 계획이다.

_ 연극 [爾]의 장생 이승훈, 발기불능에 걸린 보스로 돌아오다!
대한민국 연극계의 일대 획을 그었던 작품 연극 [이]에서 [장생] 役으로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던 배우 이승훈이 이번에는 발기불능에 걸린 전국구 보스 [덕구]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계획이다.
치열한 싸움을 통해 보스에 오른 덕구는 그러나 언제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그만 발기불능에 걸리게 되고 그와 동시에 보스로써의 의욕도 상실하게 되는 인물이다. 이승훈은 기존의 이미지와는 조금 상반된 이번 역을 통해 그동안 보여줬던 진지한 모습과는 다르게 희극적이면서도 개성강한 연기로 또 한 번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려 한다.
[爾]의 장생에서 발기불능에 걸린 보스로 새롭게 변신한 배우 이승훈이 또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줄지 기대해 보자.

_ 작, 연출 의도
인간이 집단을 이뤄 살아가는데 있어 그 삶이 좀 더 진보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규칙과 법규를 만들어 질서를 잡는 것이 그 기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규칙과 법규를 제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책임자를 다수의 의견을 통해 선별하게 되고 그들에게 일정부분 일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데 이것을 통상 [권력]이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누리는 그것이 바로 권력 되겠다. 따라서 권력이란, 사람들 즉 국민들이 만들어 준 것이고 그 이유는 국민들을 잘 살 수 있게 일을 하라는 의미 다름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권력들, 특히 국민의 다수가 건네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애초 권력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의미가 퇴색 된지는 이미 오래이고 오히려 그 주인인 국민을 하인부리 듯 하는 황당함이 만연되어 있다.
본 작품 [권력유감]은 바로 이러한 권력에 대한 풍자가 그 목적이다. 주먹으로 어둠의 세계를 평정한 덕구가 [발기부전]이라는 진단을 받고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통해 권력이라는 허상을 풍자함과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보도록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영원히 존재하게 될 권력! 그 권력의 진정한 본 모습을 이번 공연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4. 극장으로 가는 길

 

 

세부장르 연극 > 연극
장소      대학로극장
출연      이승훈, 김소영, 정재진, 이영진, 이재인, 황순영, 김재철...
관람등급 만 15세이상
관람시간 10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