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존경하는 스님과 공양을 함께 하게 되었다. 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천주교 신자이지만 그것이 스님을 따르는 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리는 무르익고 여러 대화가 스님과 나 사이에 오갔다. 그러던 중 스님은 불쑥 내게 물으셨다.
"종교와 예술의 차이가 무엇이냐?"
당연,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흔들어보시려는 화두였을 거다. 나는 불안하면서도, 당돌하게 대답하였다.
"매체의 차이 아닙니까?"
종교는 전달할 매체가 없고 없어야 한다. 예술을 그러나 매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이 점이 종교와 예술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에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재차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종교와 예술의 차이가 무엇이냐?"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답하든 우문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스님은 부연하셨다.
"그걸 알면 예술을 할 수 없다."
그 말씀에 나는 두려워졌다. 그래서 성급하게,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예술의 한 장르라는 것이, 쉬 바람에 흩어질만한 것이라는 걸, 나는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이 저 너머, 아제 아제 바라승아제 하는 그곳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하는 나의 발설은 거짓이었다. 궁금했다. 종교와 예술의 차이도 궁금했거니와 스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했다.
스님은 묵묵히 식사를 계속하셨다. 그릇은 하나 둘 흰 바닥을 드러냈다. 스님은 또 물으셨다.
"종교와 예술의 차이가 무엇이냐?"
구태여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문득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스님, 말씀해주십시오."했다.
스님은 또 빙그레 웃으셨다.
"원후취월이라는 것이 있다. 원후취월, 불경에 그런 말이 있다.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이렇게 이렇게 애를 쓰는 거다. 근데 달은 저기! 저기! 있는데. (웃음) 그게 예술이다. 그럼 종교는 뭐겠냐? 그 원숭의의 목을 탁! 하고 내려치는 게, 종교다."
스님을 또 웃으셨다. 그리고 말을 잇대셨다.
"예쁘지! 물에 비친 달이 얼마나 예쁘냔 말이야. 원숭이한테 저기 '진짜' 달이 있다! 라고 알려줘도 원숭이는 그걸 원하지 않아. 물속에 있는 게 더 예쁘거든. 그걸 쥐려고 손으로 요렇게 요렇게. 그럼 뒤에서 그 모가지를 탁! 그게 종교야."
"스님, 예쁜 걸 추구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스님은 답하셨다.
"진짜가 아니잖아."
그러시고는,
"예술이라는 게 그렇게 허망해! 내가 그래서 출가한 거야."
스님은 원래 문학을 전공하셨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스님 스마트폰에 저장된 내 나이 적의 습작시를 보기도 했다. 봄눈을 처녀의 발악에 비유한 그런 시였다. 그 뒤로 이어진 이야기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 없는 말씀들이었다. 나는 스님에게 웃으며 물었다.
"스님, 머리 깎고 출가할까요?"
옆에 있던 여자친구의 얼굴만 굳어질 뿐이었다. 나는 농담을 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지금도 남은 불편함을 쟁여두게 되었다.
* 원후취월(猿猴取月) : 원숭이[猿猴]가 달을 잡는다는 뜻으로 동진(東晉)의 불교경전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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