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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문장] 회색인, 최인훈, 209쪽

"서양 사람들이 치른 혁명이란 외적을 물리친 무용담이 아니야. 안에서의 싸움, 자기와의 싸움이었어. 우리들의 정치의식은 이걸 혼동하고 있어.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다는 것과, 인민의 자유를 위해서 싸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야. 독립된 다음에 왕정을 복고시킨대도 민족의 독립이라는 관점에서는 모순이 없지 않나? 그야 독립지사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우선 독립이 목표였다는 건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상 민주주의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어. 어떤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 그 사회가 역사적 결단(즉 혁명이지)에 의해서 채택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얼마나 취약한 건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바로 여기 있어. 그러니까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세력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라는 것도 지극히 관념적인 거야."(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