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삼국유사를 읽는다. 조신의 이야기다. 전기류 소설을 공부하던 차에 읽게 된 것이지만, 나는 그만 그 안의 문장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紅顔巧笑, 草上之露, 約束芝蘭, 柳絮飄風, 君有我而爲累, 我爲君而足憂,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붉은 얼굴과 어여쁜 웃음은 풀 위의 이슬이고, 지난과 같은 약속은 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일 뿐입니다. 당신에게 내가 있어 누가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곰곰이 지난 날의 즐거움을 생각하여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과 걱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어찌하다 이 지경까지 왔습니까. 새들이 모두 모여 함께 굶주리는 것보다는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보면서 짝을 그리워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힘들면 버리고 편안하면 친해지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짓이지마는, 나아가고 머무름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을 따라 이만 헤어지기로 하십시다. * 꿈 속의 이별이라지만, 가슴을 저며온다. 이야기는 말한다. "조신은 망연자실하여 세상일에 전혀 뜻이 없어졌다. 고달프게 사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100년 동안의 괴로움을 맛본 것 같아 세속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조신의 심정이란 어떠하였을까? 꿈에서라지만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50여 년을,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기꺼이 견뎌냈던 조신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단지 가난을 겪었다는 사실을 괴롭다 여겼을까?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힘든 것은 바로 헤어짐일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지 않았는가? 조신처의 말처럼 지극히 사랑했기에 50년은 견뎠던 것일 거다. 그러나 운명과 같이 이별은 다가왔지 않은가. 조신도 승려였다지만 세속의 아픔은 그토록 참담한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 이 밤, 나는 조신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헤어짐이라는 말에 훼손될까 두렵고, 잊혀진다는 말에 상처 입을까 두려워 나는 이 밤, 조신의 괴로움을 알며 좀 더 지새울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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