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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서평] 대신 써준 자서전이었다! -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기호)


대신 써준 자서전이었다!
이기호의 소설집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단편 「원주통신」과 「수인」을 중심으로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전 S대 학생입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믿어요? 그럼 재학증명서를 떼어 오세요.”하는 게 내가 사는 세상이다. ‘구술’만으로는 나를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십대가 되던 순간부터 증명서 뗄 일이 참 많아졌다. 그 증명서들이라는 것이 각기 이름만 다를 뿐이지 기실 그 구실은 ‘내 신분 증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주민등록증이 대표적이다. 그곳엔 내 고등학교 시절 얼굴과, 숫자화 된 나의 좌표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지문과, 거주지의 이동 경로 등이 빼곡하게 새겨져있다. 거기에는 내 성격,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걸었던 길의 의미 등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에 ‘신분증’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어색하곤 했다. 그것은 결국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드러내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기호의 소설집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속에 실려 있는 단편 「원주통신」과 「수인」은 이러한 현실을 잘 드러낸다. 굉장히 유쾌하고 가속도 또한 높은 이 두 작품은 어쩌면 그 재기발랄한 기표 속에 ‘현대 인류의 보편적 실존’이라는 거나한 기의를 구겨놓고 있는지 모른다. 「원주통신」을 보자. ‘나’는 학창시절 정말 별 볼 일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관심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것은 어느 누구든 똑같은 법. 그래서 ‘나’는 거짓 행세를 한다. 처음엔 그냥 “선생과 이웃사촌이라는 프리미엄을 내세워 친구들을 제압하곤 했”(101)지만, 차차 그가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라는 소문이 돌자 부인을 하기는커녕 그 소문에 편승에 외손자 행세를 했던 것이다. 「수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시멘트에 묻힌 교보문고로 들어가 자신의 소설을 꺼내 와야 한다. 그의 존재는 ‘소설’이라는 타자에게 전적으로 달려있고, 정작 그 스스로는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굉장한 역설이다. 자신이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는 거. 고대 사회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예를 들면 ‘호패’ 같은― 물건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오늘날과 같을까 싶다. 「원주통신」의 별 볼 일 없는 주인공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일면식도 없는 ‘박경리 선생’을 이용하고, 「수인」의 주인공이 자신을 증명 받기 위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감행하는 것은, 우스꽝스럽지만 어쩐지 핍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리 삶이 그와 다르지 않을진대, 어디에 간극이 있겠는가. 그저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자위하는 수밖에.

“원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수인」, pp.199)

그래 원인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가 이렇게 된 게 문제가 아니고, 그것에 적응 못 하는 사람이 환자인 게 되는 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능성’을 보아주지 않는다. 모두 ‘자격증’ 따위의, 나 아닌 외부의 것으로만 취급유효 처분을 받는다. ‘칠레’는 ‘대형자동차 운전면허 소지자’를 원하고, 그루지아 공화국은 ‘정보처리기능사’를 원하고, 바티칸에선 ‘소형원동기 운전면허 소지자’를, 가나에선 ‘숙련된 배관기술자’를, 아랍에미리트에선 ‘병아리감별사 자격증 소유자’를 원한다. 이러한 ‘입국 허용 조건’에는 어디에도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 “언어습득능력이 빠른 사람” 따위의 것은 없다.

“그가 썼으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나온 책, 그가 대신 써준 자서전이었다!”(「수인」, pp.228)

그래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남이 써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씁쓸해진다. ■ ('1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