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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서평] 사회주의 학자가 바로 본 조선의 역사 - <민중조선사>(전석담)

통일은 반드시 온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 갈라진 물길은 언제나 하나의 바다로 흐르는 법이다. 이 민족도 가까운 시간 안에 통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통일을 말하면 '운동권'으로 이미지가 떠오르게 된 적이 있다. 통일은 '운동권'의 캐치프레이즈가 되고 여당의 대표적 구호가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래서 통일을 말하는 자에게 '색깔'을 뒤짚어 씌우는가 하면, 심지어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식의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다 정치적 이유에서다).
  물론, 수많은 우리 국군을 죽인 북한의 공산당이 저주스럽고, 그러한 북의 지도자가 혐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순수한 의미의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인민'들을 아사(餓死)의 낭떨어지로 밀어붙이는, 저 정체불명의 집단을 추악스럽게 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휴전선 이북의 땅은 헌법 상 여전히 '우리의 땅'이며, 그러므로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응당 '우리 국민'임을 말이다. 중국이 북한을 장악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사실 대의명분은 전무하고 오로지 '힘의 알력'에만 입각한 사상누각이다.
  이러하므로, 결국 통일은 우리 수중에 떨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댐이 붕괴'하듯 갑작스레 말이다. 나는 그래서 통일한국에 살아갈 날을 대비해서라도, 분명히 우리 역사 안으로 들어올 '사회주의'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이것을 말한다 ; 통일 이후 남북의 주민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되면, 지난 수십년 간 몸에 익힌 '이념'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통일 20년을 맞은 독일 역시 여전히 그런 갈등을 겪고 있으니까 말이다. 불과 30여 년 분단된 동서독이 그 정도라면, 남북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갈등을 미래 대비하여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통일 이후 새롭게 정립해야 할 '민족사' 서술에 있어서도 '이념'에 대한 이해는 필수불가결하다.
  내가 골라든 책은 '전석담'의 <민중조선사>이다. 전석담은 1940년에 일본 동북제국대학(도호쿠제국대학, 東北帝國大學)을 졸업한 뒤, 국내에서는 경성상업전문대학 경제학 교수를 역임하고, 1945년부터는 동국대학교에서 조선경제사와 경제학사를 강의한 민족주의 경제학자이며 역사학자이다. <민중조선사>는 1948년 출간된 책으로, 신영복 교수가 정운찬 씨에게 권했던 책으로도 알려져있다. 원제는 <조선사교정>이지만, 무슨 까닭인지 '범우문고'판으로 출간될 때에는 상기명으로 갈음되었다. 이 책은 '공산당 선언 제1장'에 명시된,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마르크스-엥겔스 사관에 입각하여 조선사 '전체'-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왕조'가 아니라, 고래로부터 한반도와 만주, 요동에 걸쳐 있는 민족사 전체를 말한다.-를 헤쳐 환원하고, 다시 재정립 한 '전석담'의 사적 연구 보고서이다.
  마르크스-엥겔스가 저술한 '공산당 선언'의 사관에 입각하여 쓰여진 책이므로, 전석담이 바라보는 모든 민족사는 '착취자 대 피착취자'의 구조를 갖는다. 다만, '원시공산제 사회'라고 일컫는 고대의 소규모 공동체 사회만은 이 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도올 김용옥이 각종 강의에서 역설한대로, '원시공산제'는 오늘날의 사학자들에 의해 완전히 폐기된 '허구'이지만, '공산주의'혹은 '프로레타리아트'의 이념을 이해하는 데에는 유용하다. 하지만, '원시공동체'에 대한 전석담의 언급은 舊 공산주의의 잔재라고 이해할 때, 이외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책은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서문/조선사 연구의 실천적 의의'에서 시작해, 본론은 크게 제1,2,3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편은 '원시조선'에 대한 서술로서, 제1장에서는 '원시조선에 있어서의 생산력 발전'을, 제2장에서는 '원시조선의 사회조직/씨족사회'를 서술하고 있다.

제1편 원시조선
  - 제1장 원시조선에 있어서의 생산력 발전
  - 제2장 원시조선의 사회조직/씨족사회
제2편은 '봉건조선의 발전 과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제1장 '고대 아시아적 국가의 성립과 발전'에서 시작해, 제4장 '관료적 집권 봉건제의 완성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구성이다. '봉건'이라는 용어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학문적 논의는 내 분야가 아니므로 차치하도록 하겠다.

제2편 봉건조선의 발전 과정
  - 제1장 고대 아시아적 국가의 성립과 발전
  - 제2장 관료적 집권 봉건제의 성립 시대
  - 제3장 관료적 집권 봉건제의 발전 시대
  - 제4장 관료적 집권 봉건제의 완성 시대

제3편의 표제는 '봉건조선의 몰락과 식민지화'이다.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웠던 파트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운 역사이므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핍진'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편은 제1장 '동학농민란'에서 시작해, 제2장('일본제국주의의 침략 과정)부터 제6장('8 ·15에 이르기까지')까지는 '일제의 침탈 과정과 강점시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3편 봉건조선의 몰락과 식민지화
  - 제1장 동학농민란
  - 제2장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과정
  - 제3장 식민지조선 수탈의 제형태
  - 제4장 3 ·1 운동
  - 제5장 6 ·10 운동
  - 제6장 8 ·15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투철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민족사 전체를 재해석한 보고서다. 또한 식민사관의 대표 격인 '사대주의적'이고 '노예근성'에 찬 민족성을 재해석에 우리 민중이 과감히 사대와 외세, 봉건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비록 '사회주의'에 심취하여, 1948년에 '월북'한 학자이기는 하나 '민족'을 사랑한 그의 마음만큼은 투철했고, 더나은 미래를 창발해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정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10.10.27)

민족의 자유와 독립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설사 남이 준다고 한들 자유와 독립을 피로써 싸워 얻지 못한 민족이 어찌 그것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인가? (...)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민족에게만 독립이 있을 수 있고,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인민에게만 자유가 있을 수 있다. (pp143~149)


오늘날 조선 인민이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손을 놓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면 또한 만일 우리 민족의 진로를 옳게 밟지 못한다면 이번에는 동대문 밖에 또 하나의 독립문이 쓸쓸히 서 있게 될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시급히 우리 자신을 무장하고 우리 자신의 힘을 결집ㆍ강화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낡은 조선의 물질적ㆍ정신적 모든 잔재를 깨끗이 청산해야 할 것이다. 경제상으로는 봉건적 수탈의 토대가 되어 있는, 다시 말해 인민 대중을 무기력한 농노로 만들고 있는 낡은 토지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과 정신상으로는 사대사상에 기원을 둔 외세의존의 노예근성을 버리며 또한 입신영달주의(立身榮達主義)에 입각한 투기적 진출을 삼가야 할 것이다. (pp143~149)


우리나라는 이미 옛날의 폐쇄된 ‘아시아의 소우주’가 아니고 우리 인민은 이미 ‘은둔의 인민’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어야 한다. (pp143~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