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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서평] 장난기의 철학 -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셸 실버스타인)


셸 실버스타인을 모르더라도, <아낌 없이 주는 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버스타인은 바로 <아낌 없이 주는 나무>의 저자로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활용해 우리에게 많은 일깨움을 주던 작가였다. 그는 1999년 작고했는데, 이번에 그의 유고작을 묶어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살림)라는 이름의 시집이 나왔다. 옮긴이가 김기택 시인이라고 하니, 번역본으로서의 가치도 원작에 비해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 기대할 수 있었다.


책은 내 손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담고 있는 내용만큼이나 앙증맞다. "Every Thing On It."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손바닥만한 요 책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발칙한 주장이 말이다. 원작의 표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어판만큼은 편집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느꼈다. 


저자 셸 실버스타인은 1930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며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만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신문과 잡지에 만화, 그림 에세이 등을 연재하다가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1964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아낌없이 주는 나무』 외에도『총을 거꾸로 쏜 사자 라프카디오』『코끼리 한 마리 싸게 사세요!』『골목길이 끝나는 곳』『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다락방의 불빛』『떨어진 한쪽 큰 동그라미를 만나』등 많은 이야기와 시를 썼다. 극작가이자 그래미 상을 수상하고 오스카 상 후보에도 오른 작곡가였으며 가수로도 활동하면서 199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예술가로서 다방면에 재능을 펼쳤다.(위드블로그 저자 소개 中)

작가는 <지금부터 몇 년 동안>이라는 제하의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잠깐 이 시집을 휙휙 넘겨도/나는 네 얼굴을 볼 수는 없겠지./하지만 아주 먼 어느 곳에선가/네 웃음소리를 들을 거야. 그러면 나도 미소 지을게."(p.9)

이 작품집이 유고작을 묶은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 시를 책 서두에 놓은 편집 상의 배치가 원저자의 의도와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 속의 메시지가, 실버스타인이 평생을 견지했던 창작의도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나는 실버스타인은 자신의 작품을 읽는 이들이 즐겁기를 바랐을 것이라 믿고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똑같은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지금부터 몇 년 동안>이란 시는, 내가 여자친구에게 속삭이고 싶은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p.10-11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한국어판 표제작으로 뽑힌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은 이 책을 완독하기 위한 워밍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무장해제하여야 한다. 꽁-하고 마음을 옹송그리고 있으면, 이 책의 참맛을 느끼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애써 심오한, 형이상학적인, 궁극적인 무엇,을 찾으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장난기는 장난기로 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심오한 메시지를 찾는 건, 그 다음의 일이다. 이것이 이 책의 유일한 독서법이다.

핫도그를 주문하면서
"모두 넣어 주세요." 그랬는데,
그게 큰 실수였지 뭐야.
양념을 다 넣어 달라고 한 건데
앵무새를 넣은 핫도그가 나왔거든.
밧줄 구멍이 뚫려 있는 돛대,
손목시계, 멍키 스패너, 갈퀴도 들어 있었어.
그뿐인 줄 알아?
금붕어에다가 깃발, 바이올린,
개구리, 앞 베란다에 매는 그네,
쥐 가면까지 들어 있었다니까.
이제 핫도그를 주문할 때는
모두 넣어 달라고 하지 않을 거야.


표제작을 읽고나니 대충 느낌이 오지 않는가?

p.41 '다리로 달리는 차'


수록작 하나를 더 소개하려고 한다. 41페이지에 실려 있는 <다리로 달리는 차>라는 시다.

바퀴 대신에
다리로 달리는 차는
발바닥이 닳아도
바퀴가 없어도
지치지 않아.
너는 이 차를 당연히
살 수 있어.
이 차는 완전하게
작동하니까.


삽화를 보면, 'FOR SALE'이란 글씨 위로 어떤 사람의 민머리가 빠끔히 보인다. 나는 그 머리와 마주하는 순간, 당황했다. 이것도 '징후발견적 독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말의 힌트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리로 달리는 차란 결국 '나'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나'는 이제 '다리로 달리는 차'에 불과해지고, 상품이 되어 매대에 오르는 존재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꿈보다 해몽이 그럴싸하다고? 해석이야, 앞서 말했듯이 자유다. 어떤 해석도 혹은 해석이 없더라도, 다 맞는 독서법이다. 이 책의 품이 넓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