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서평] 사랑한다는 것 -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1975, Mercure de France



생은 생을 비춘다. 너는 나의 거울, 나는 너의 거울이다.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독고다이는 비루하다.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도그마는 필연적으로 붕괴를 앞두어야 한다. 생이 생을 비추고, 네가 나를, 내가 너를 비추는 그 인드라망 속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사람다워진다.

그렇다면 제각기 존재하는 각인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는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단언한다. 어찌 보면 진부한 답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하지만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 사랑을 글자로 익힌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자기 앞의 생>은 에밀 아자르가 간파한 생이라는 것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눈앞에 구현해준다.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 그것이 에밀 아자르가 말하고자 한 사랑인 것 같다.

화자는 주인공 모하메드(이하, 모모)인데, 10살이 되던 해에 실은 자신이 14살임을 알게 되는 꼬마다. 모모는 마치 갓난아이가 ‘엄마!’라는 한 마디를 내뱉기 위해 같은 단어를 수 만 번 듣는 것과 같이, 로자 아줌마와의 사이에서 무수한 일들을 겪어내다 결국 아줌마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랑’이란 단어의 출현이 빈번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랑은 본래 무형에서 시작한 것이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 가진 것이라고는 따뜻한 마음뿐인 그 사람들 속에서, 강한 척 하는 그 사람들에게서, 나는 지나친 동정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고 언제나 핍박 받는 존재다. 그러나 그들은 소위 ‘센 척’하고 ‘강한 척’한다. 그것이 도리어 내 가슴을 짓눌렀다.

불편한 소설이다. 로맹가리를 사랑했지만, <새들을 페루가 가서 죽다> 보다 쉬워서, 도리어 자꾸만 생각나는 소설이다.■(20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