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문학동네
신형철은 "기괴함(grotesquerie)이 낯선 것들과의 조우에서 발생하는 미학적 효과라면 섬뜩함(uncanniness)은 낯익은 것이 돌연 낯선 것으로 전화될 때 발생하는 (미학적 효과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효과"(<몰락의 에티카>, p.672)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이라면, 나는 늘 섬뜩함 속에 산다. 걷던 길은 낯설어지고, 익숙한 사람들의 이름은 어느 순간 낯설어진다.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졌던 박성원 존함 세 자와, 박혜경 존함 세 자를 신형철의 책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내 스승 두 분을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고, 흠숭한다. 가까이 있되 가까워질 수 없는 경지에 있는 분들이다.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
각설하고- 신형철이 섬뜩함을 말한 지점은, 편혜영의 소설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신형철은 편혜영의 소설을 분석하며 '섬뜩함'에 대해 이야기 하였지만, 기실 신형철의 평론은 그 자체로 섬뜩하다. 앞서 신형철이 섬뜩함의 정의를 "낯익은 것이 돌연 낯선 것으로 전화될 때 발생하는 정치적 효과"를 고스란히 인정하고, 다시 신형철의 평론 그 자체를 바라볼 때에 그렇다. 신형철은 낯익은 작품들 속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며 그러면서 결코 '거부감'이 들지 않는 분석을 제시한다. '평론'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개별 평론가마다의 시각차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때, 좀 더 '보편적인 인식'을 환기하는 평론이 좋은 평론이 될 것이고, 신형철의 평론은 그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이 모순이라고 생각하는가? 낯익은 것이 낯설어지는 섬뜩함 속에서 '보편'을 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나는 단연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아낼 때 과연 그 '낯선 것'이 기실 '실상'이라면, '진리'라면, 그것은 도리어 '보편'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숨겨져있는 보편이고 진리고 실상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형철이 '섬뜩함'에 대하여 '정치적 효과'라고 한 것에 적극 동의한다.
신형철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는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물론 평론 텍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신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신형철의 문장은 유려하고, 그러나 현학적이지 않으므로 매력적이다. 신형철은 <몰락의 에티카> 속에서 소설, 시를 비롯해 '영화'에도 손을 댄다. 영화가 사실은 소설 같은 텍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영상미학이라고 한다면 문학평론가가 영화에 손을 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영화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담론이 필요한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하는 지점이다.■('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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