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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서평]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하여 -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베아테 테레자 하니케)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드러내기엔 꺼려지는 문제들이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말이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비화하지 않는 이상 말 그대로 '개인의 문제'에 그친다. 문제는 후자이다.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드러내기엔 꺼려지는 문제'가 '사회적 문제'라면 그건 대단한 모순이고 그 자체로 썩은 대들보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경우다. 방관하는 순간부터 집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성폭력 문제이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성폭력이란, 성추행(간접적)과 성폭력(직접적)을 두루 아우르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상 '성폭력'이라 하면, 후자의 경우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성 문제'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로 여겨져 왔기에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성폭력' 문제는 양지에서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성폭력 문제가 방조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종류의 문제인가? 쉬쉬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특히, '미성년'을 상대로 한 성폭력 문제를 생각해보자(참고로 여기서 미성년이란 '여성'만 뜻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근래에 그와 같은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사촌 동생을 강간하는가 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여자아이의 순결을 빼앗고, 시골 동네 남자들이 정신지체를 앓는 소녀를 성욕해소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뉴스들을 들어봤지 않는가? 이 문제를 방관해야 하는가?

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해결방안이 도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 앞에서 언급한 '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성인지는 대개 '방어적'이다. 성문화가 많이 개방되었다는 지금도 그 문제는 공공연히 입에 올리기엔 버거운 문제로 남아 있다. 무수하게 많은 성폭력 사례가 언론을 통해 고발되고 있고, 언론에서 언급되지 않은 허다한 사건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물쩍 넘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독일소설이며 '올덴부르크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베아테 테레자 하니케)는 이러한 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담담히 다룬다. 주인공인 말비나(15살)가 어느 날 친할아버지로부터 기분나쁜 키스를 받는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와 같이 샤워하기를 좋아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 그녀에게 이상한 성적 메시지를 보낸다. 말비나는 혼란스럽다. 기분이 나쁜 것 같기는 한데, 거부를 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만 한다. 결국 고민 끝에 가족에게 모든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단지 사춘기 소녀의 예민함 때문이라고 가족들은 치부했던 것이다. 말비나는 더욱 큰 혼란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말비나가 혼란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성교육'이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데에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의 미성년자들에 대한 성교육은 피상적이고, 간접적이다. 유럽 등과 같이 성관계를 처음 경험한다는 나이가 지속적으로 어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성교육 커리큘럼은 10년 전과 다를 게 없다. 우스개소리로 '청소년들이 '성인물'을 통해 성교육을 받는다'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돌고 있는 실정이니까 말이다.

우리는 성에 대한 인식을 혁신해야 한다.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를 읽고 내가 느낀 바는 그것이다. 소설 속 말비나는 '비첵'부인을 통해 자신이 당한 일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물론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할 기회를 잃었지만, 말비나는 비첵부인을 통해 자신의 소중한 성에 대한 주관을 갖게 된다. 주관이 생겼으니 태도도 달라진다. 성교육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 책을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들이 읽어야 할 까닭이다. ■ (2010.11.29 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