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확실한 것은 없다. 철학자들은 '나'라는 존재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하곤 하니까. 무엇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는 사실은 그럼 확실한 것일까? 삼라만상이 무상(無常)하지만 무상하다는 그 사실 자체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불가의 가르침은 참일까? 물론 그것에 대한 답이 가능했다면 수 천 년 동안 이 질문이 되풀이 되지는 않았겠지.
이런 의문을 서두에 적은 것은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이 전직 연쇄살인범이자 알츠하이머 환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죽인 것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 살인을 저질렀고 20여 년 전에 손을 씻은 70대 노인은 자신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허사가 된다는 얘기다. 상상할 수조차 없이 외로운 자아 아닌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르고 독자만 아는 그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어떤 도덕적 처단을 내리기에는 대단히 안쓰럽다.
자기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의 그 고독함!
마지막 희망으로 붙들고 있던 촛불이 팟 꺼졌을 때의 그 적요(寂寥)!
완전한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기분이란 건 어떤 것일까.
가까운 기억부터 차근차근 사그라져가는 그 기분이란...
상상하기 싫은 적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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