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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박영규



사관의 붓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사초' 문제가 붉어졌다. 자세한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그 한바탕 난리 속에 재조명된 것이 '실록'이다. 위대한 조선왕조실록 말이다. 그 '사초'의 한바탕 대거리가 벌어지던 판에서 어느 편에 섰던 사람이든 '왕도 두려워했다'는 사관의 붓, 그 치열한 정신을 복기하며 부끄러워 했다. 그것은 또한 우리 시대에는 왜 그런 치열한 정신이 부재하는가 하는 본질적이지만 자기성찰적인 반성 역시 들어있는 듯싶다.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로 유명한 박영규 씨의 책이 반가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박영규 씨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분으로 전문 사학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스테디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를 연달아 내놓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학자적 열정은 분명히 존경할만하다(인세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 움직이는 자리에 돈 안 따라붙는 경우가 있던가? 지나치게 도덕적, 교조적이지 않았으면 한다).


역사는 지금/여기에 있다

이번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의 기획을 보고 나는 무릎을 쳤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새삼스런 상기 때문이었다. '역사'를 지금/여기의 문제가 아니라 저 먼,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로 여기는 버릇이 탁 깨어진 것이다. '역사'를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지금 여기서 누리고 만들고 있는 모든 것이 다 그것으로 소급되는 줄 알면서도 정작 '역사'를 공부하자 하면 지금 여기가 아니라 저 멀리까지 가버리지 않았던가.


다행히도 나에게 현대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줬던 저자들이 있었다. 강준만, 박노자, 이덕일 씨 등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들에 대해 사상적 편향을 논할 수 있겠으나 비판에 앞서-비난이 아니라-우선 그들의 저서를 읽어 보고 평을 했으면 한다. 물론 사상적 패러다임이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 있어 약간의 영향을 끼칠 수 있겠으나 팩트를 중심으로 하는 사관의 주관이야 '가미'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부터 독서의 폭을 넓힐 필요는 있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기획, 객관적 서술 그리고 대중친화성

<한 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은 그 기획이 새롭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혹시 박영규 씨가 지난 사초 난리통을 보며 "이게 실록이야! 봐!"하는 심정으로 내놓은 것은 아닌가 한다. 현대사를 기록하는 것에 있어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부분을 '최대한 객관적 서사'로 극복하려 했던 것 같다.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내가 우리 대통령들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점이다. 정치적 선입견을 차치하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렇게 몰라도 됐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뻔한 이야기도 많다. 객관적 서술을 지향하다 보니 일반적 서술이 되어버린 부분도 있다. 상식적인 수준 말이다. 이 책의 이런 특징은 오히려 대중친화성을 높인다. 확실히 말하거니와 이 책은 전문 학술서가 아니다. 타깃이 분명한 거다. 나 같은 비전공 국민. 바로 대부분의 우리인 것이다.



과감히 추천하는 책

일독을 권한다. 몰랐던 사실은 새로 배우면 되고 알았던 사실은 공감하며 술술 읽으면 된다. 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여기의 것이고 저 멀리 있는 것도 지금/여기의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특히 현대사에 있어 시기를 구분하는 주요한 지표가 '대통령'인(소위, 노무현 시대, 이명박 시대 하는 것)만큼, 어느 나라보다도 대통령이 전권을 갖고 국정을 좌지우지 하는 나라인만큼, 무엇보다 헌법에 명시된 것과 같이 그들의 권력 또한 우리의 주권에서 나오는만큼, 이 책은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