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개별적인 존재다. 그러나 칸트의 말처럼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없이는 결코 성격을 형성하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관계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아마 사랑일 거다. 물론 사랑에는 (드 보통이 말했듯이)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친구 사이의 우정도 사랑의 한 형태-저자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 우정의 한 형태라고 얘기하지만-일 것이며, 부모와 자식 간에 존재하는 사랑도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톺아본 관계는 그 중 연인 사이의 관계이다. 책의 말미에서 "성적 관계를 수반하는 우정의 한 형태"라고 정의 내린 그 사랑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의 통찰대로라면 연인 간의 사랑이란 '성(sexual)'과 '우정(friendship)'이라는 관계를 모두 만족해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성은 서로 간에 끌리는 본능이란 것의 영역이고, 우정이란 그 두 관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이런 구분조차 나는 지나치게 도식적인 것 아닌가, 느끼기는 한다). 남녀 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감정적인 부분보다 이성적인 부분이 중요해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 공감이 된다. 기혼 남녀들은 흔히 "10년 살아 보면, 사랑보다 우정이라는 말이 앞선다."라고 하는 것을 곱씹어 보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토록 명료하게 사랑을 정의 내린 알랭 드 보통조차도 끝끝내 가서는 아무런 확신도 얻어내지 못한 듯 보인다. 화자 '나'와 연인 '클로이' 사이의 A to Z를 24가지 담론으로 나눠 지극히 이성적이고 학자적인 태도로 분석해보려 하고 있지만 결국 사랑은 사랑이라는 결론에 맞닿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해도 사랑은 그 노력을 허사로 만들만큼의 거대함이 있다는 거다. 그래.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이 도리어 답이 되는 거 같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명사 아래 이루어지는 수많은 커플의 사랑이 독자적이라는 건 아무래도 불가해하지만 진실이라 인정할 수 밖엔 없다.
그것을 완전 무결한 논리로 풀 수 있다면, 소크라테스도 스탕달도 살바도르 달리도 그토록 사랑이란 관계에 휘둘리지는 않았을 거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분명히 읽어 볼만한 책이다. 특히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우리 나이로 스물다섯 살에 썼는데, 어린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그 오묘한 불가해성을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탐구의 대상으로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우리는 살며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자기 자신만의 사랑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꼭 거쳐가야할 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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