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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의 사각형/생각들

구정과 신정, 그리고 '설날'의 의미는?

일제가 만든 말 : '구정'과 '신정'



신정과 구정의 구분은 양력 체계의 등장과 함께 출현합니다. 우리나라는 1896년 공식적으로 양력 체계를 들여오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첫 날의 의미로서의 '설'이 하나 더 생기게 됩니다. 수 천 년 동안 사용해 온 전통적 시간 체계를 쉽사리 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이때까지 우리 조상들은 전통이 그러했던대로 '음력설'을 따라 차례를 지냈죠. 신정과 구정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 선글라스를 끼고 어가에 탄 고종(광무 황제)의 모습


하지만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탄 함에 따라 한국 전통의 음력설까지도 부정 당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물론 아무리 극악무도한 일제라고 해도 조선의 뿌리깊은 전통을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낸 말이 '구정(舊正)'이지요. 조선민족의 음력설은 '오래된 설'이며 나아가 사라져야 할 낡은 인습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설에 조응하는 단어로 등장한 게 바로 '신정(新正)'이죠. 글자 그대로 '새로운 설'이며, 새 시대에 따라야 할 설이라는 것이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양력을 도입한 건 조선(1896년은 대한제국 선포 1897년에 한 해 앞섭니다)이었지만 구/신정이란 새로운 말까지 만들어가며 양력설을 체계화하고 장려한 건 바로 일제였다는 거죠.


일제 강점 34년 11개월은 고스란히 '관성'으로 남아서, 해방 후에도 구/신정이란 단어가 버릇처럼 사용됩니다. 심지어 한국 정부는 그 사용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음력설을 휴일로 지정하지 않고 양력설만 휴일로 지정했죠(「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 1949년, 대통령령 제124호). 박정희 정권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음력설에 휴무를 주는 사업장에 제재를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민족의 유구한 전통이란 건 오묘한 것이어서 일제의 술수과 우리 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는 음력설을 쇠고 있었죠. 그러던 것이 1985년에 이르러서야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됩니다(「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중 개정령」, 1985년, 대통령령 제11615호). 물론 '단 하루'였죠. 그러던 것이 1989년에 관공서에 대한 '공휴일에관한규정'이 개정(「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중 개정령」, 1989년, 대통령령 제12616호)되면서, 음력설이 '설날'로 바뀌어 불리게 되고 전후 하루씩을 더해 총 3일(사흘)로 늘어난 공휴일이 됩니다(양력설은 이틀로 규정).


이로써 우리의 전통 설인 음력설은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일제가 덮어씌우려 했던 '오래된 설'의 오명을 씻어내게 됩니다. 이후 신/구정이라는 용어 자체의 사용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고요. 


아직 이 용어에 익숙한 분들이 계시다면 의식적으로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 좋겠죠?


△ "뛰지 말고 밀지 말고" 1970년대 서울역의 귀성객들


그럼, '설'의 어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경향신문 1997년 2월 6일 자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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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을 가리키는 '설'이란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동안 '설'은 '슬프다' 혹은 '삼가다'란 뜻을 가진 '섧다'라는 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최남선 이후 많은 학자들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는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려온 명절을 서로운 날로 본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견해라고 전제하고 '설'이란 해가 바뀌어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한국민속학회가 발행한 '한국민속학연구 7집'에 '설 민속의 형성 근거와 시작의 시간 인식'이란 논문을 발표하고 이같은 학설을 제기했다.


임 교수는 '원단(元旦)' 또는 '신일(愼日)'이라 불리는 '설'에는 예로부터 행동을 조심했지만 이러한 풍습으로 '설'이라는 말의 유래를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오류는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에 정월 보름에 대해 '이언달도언비수이금기백사야(속된 말로 달도라 하며 이는 슬퍼하고 근심하여 모든 것을 금기한다는 뜻이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호 이익이 정월 초하루로 잘못 해석한 데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임 교수에 따르면 '설'은 '설은 날'의 준말이며 물이 '설다', 손에 '설다'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 시작해 익숙하지 않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 '설'의 유래에 관해서는 이외에도 새롭다는 뜻의 고어 '쇨다'의 관형형인 '쇨'에서 나왔다는 설(최창룡)과 '설장구', '설소리꾼' 등의 예처럼 으뜸을 뜻하는 접두사라는 의견(지창수) 등이 있다.


임 교수는 '쇨'이 '솔'이 됐다 '설'로 바뀐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옛 문헌을 살펴보면 '설'이 '솔'을 거쳐 다시 나이를 뜻하는 '살'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윤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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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저도 개인적으로는 임 교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12월을 우리말로 '섣달'이라고 하는데요. '섣달'이 '섣달'인 까닭을 흔히 '설이 든 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설'이 그럼 왜 '섣'이 될까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섣부르다'를 보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네요. 본래 섣부르다는  '설우르다'였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국문본 중 하나인 석보상절(1447)에 나타나는 말이죠. 후에 수 백 년에 걸쳐 이 '설우르다'가 '섣부르다'로 변하게 되는데요. 아시다시피 '섣부르다'의 사전적 정의는 "(형용사) 솜씨가 설고 어설프다"이죠. 임 교수님 분석과 같은 맥락입니다. 저는 그래서 '설날'에 대한 임 교수님 말씀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모두 복 많이 받는 한 해 되시기를


위 기사에 소개된 학설(?)은 아니지만 "설레다"라는 단어와는 관계 없는 것일까요? 묵은해를 보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시작한다, 라는 의미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물론 제가 학자는 아니니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블로그에 들어 오신 당신에게 지상 최대의 축복이 내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