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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퍼 나르기/공모전&투고

[2011] 새 봄, 목련의 탄생을 축하하며(투고)

2011년 4월, 대학생 시사교양지 <바이트>에 칼럼을 싣다.

새 봄, 목련의 탄생을 축하하며


봄이 왔다. 그리고 내 첫 조카가 태어났다. 아이는 딱 내 하박만 했다. 어찌나 잘 생겼는지 모른다. 나 닮아서 그렇다고 애 엄마가 된 누나한테 말했더니 정색을 한다. 그래도 누나는 부은 얼굴로 참 잘 웃는다. 난산이었다는데, 아들 얘기만 들으면 웃음꽃이 핀다. 병실 창밖으로 꽃이 폈다. 목련이다. 조금 늦게 올라온 거 같은데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 조막만 한 얼굴을 잔뜩 들이민다. 옹송그리고 있는 모양새가 꼭 내 조카의 주먹 같다. 갓난아기들은 그렇단다. 세상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듯 굳게 주먹을 쥐고 있는 단다. 신생아실에 있던 조카는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나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었다.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던지.

그리고 얼마 전 아이가 엄마의 병실로 왔다. 흰 수건에 쌓인 채 꼭 목련처럼 왔다. “이름을 목련이라 짓는 건 어때, 누나?”라고 물었더니, “남자애한테 목련이 뭐니.”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슬쩍 아이의 주먹을 펴본다. 다 펴봤자 내 손가락 두 마디 크기다. 생각보다 악력이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조카의 펴진 손바닥에 내 손가락을 얹어본다. 꽈악, 쥔다. 순간, 심장이 뛴다. 그 조그만 아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이란 에너지가 강렬하게 손끝을 타고, 온몸의 신경을 각성한 뒤, 대뇌에 닿는다. 아이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나는 혼자 읊조린다. 갓 탄생한 생명의 에너지 앞에 어쩐지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는 조카와 함께 퇴원을 했다. 회복이 빨랐다고 했다. 산모도 아이도 모두 건강하다 했다. 다행한 일이다. 누나의 잔뜩 부풀어 올랐던 얼굴은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전엔 얼굴이 왕벚꽃만 했는데, 이젠 노란 산수유 같다.”라고 했더니 등짝을 후려친다. 그래도 꽃에 비유해주어 고맙다면서. 그 노란 산수유 옆에 진짜 꽃이 누워있었다. 내가 혼자 ‘목련’이라고 부르기로 한 조카. 아직은 이름이 없으므로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이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아이의 머리가 살짝살짝 흔들리는 모양이 너무나 신기했다. 사촌매형이 운전하는 차는 병원을 빠져나가, 한적한 국도 변으로 들어섰다. 병원은 다소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차는 일부러 느리게 움직였다. 아이와 산모를 생각한 매형의 배려였다. 그 통에 나는 볼 수 있었다. 황홀하리만큼 흐드러지게 핀 목련의 군(群)을.

짙진 않았지만 옅고 파장이 긴 향기가 차 안을 가득 채운 건 순간이었다. 누나는 “마치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거 같아.”했다. 꽃은 그 정도로 화려했다. 목련이며, 벚꽃이며, 노랗고 붉은 이름 모를 꽃이며…. 나는 누나 내외에게 말했다. “애가 아무래도 크게 자라나려나 봐요. 온통 축하해주네.” 묵묵히 운전만 하던 매형이 그때에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가방 속에 있던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풍경을 담아댔다. 한 장면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무엇보다 보여주고 싶었다. 조카에게, “넌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온갖 꽃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어.”라고 먼 훗날에 말해주고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마지막에 아이의 얼굴도 담았다. 신생아답지 않게 하얗고 뽀얀 얼굴. “네가 목련보다 예쁘구나.” 난 혼자 또 중얼거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리며 누나에게 일렀다. “누나가 뭐래도, 난 내 조카를 ‘목련 군(君)’이라고 부를 거야.” 누나가 배시시 웃었다. “맘에 든다.”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이제 곧 돌이다. 나는 부러 거리로 나선다. 거리엔 또다시 목련이며 벚꽃이며 하는 것들이 어느새 올라와 있다. 나는 가을하늘처럼 개어있는 하늘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목련 군! 넌 참 복 받은 놈이다! 제발, 제발, 그 모습 그대로만 자라다오!”하고. 어쩌면 내게 외치는 아우성일지도 모를 그런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