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보트 하우스> 표지(아래 사진)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오래 전 반복적으로 꾸었던 악몽을 상기했다. 그 꿈은 지독한 것이었다. 발가벗은 남녀가 서로 뒤엉켜 마치 '뇌'의 모양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는데,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것이 어찌나 지독하게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고통 받던, 그 고통이 내게 고스란히 체화되던, 그런 꿈이었다.
벌거벗은 남녀의 '덩어리'는 전혀 외설적이지 않았을 뿐더러, 되레 의식의 세계에서 보지 못한 가장 비극적으고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다(그곳이 지옥이었는지도!). 그 꿈을 꾼 날이면 나는 내 힘으로 잠에서 깨어나기가 무척이나 버거웠다. 중학생 시절 그 꿈을 꾸었던 어느 날은 그대로 실신해 아버지 등에 업혀 응급실 침상에 뉘인 적도 있다.
어찌 보면 성글고도 성근 이 소설을 읽으며,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러한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각 장마다 맥락 없이 이어지다, 결국, '한 덩어리'가 되고야'마는' 일련의 원형은, 낯설고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어쩐지 내-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덩어리진 삶. 누군가의 말처럼 삶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 삶의 덩어리인 이 세상은 왜 이리도 누추한지.
작가는 작가 후기에서 이 소설을 쓰며 "자유분방과 울분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랩 음악을 염두해 두었"다고 했다. 그 말처럼 이야기는 툭툭 던져지듯 이어지다 종국엔 하나로 엮인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라임'처럼 반복되는 '보트'와 '보트 하우스'라는 단어에서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주제에 대한 상징적 도구로 사용한 이 추상적 기표는 "나는 젊다. 보트 하우스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 자유를 얻고 싶다."(pp.194)라고 하는 구체적 의도의 물화일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되풀이의 연속"(pp.90)이자, 그래서 곧 "지옥"(pp.90)이다. 즉, '보트 하우스'인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바로 그 안에 갇힌 '보트'들일 것이고 말이다.
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지옥" 속의 주인공들을 전복시키고, 독립시키며 보트의 탈출을 꾀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보트 하우스 속에 꿈과 청춘을 함께 저당 잡혀 날뛰는 저주와 살의를 가둬두려 하였으나, 오오, 나의 적의가 보트 하우스를 불태"(pp.223)우고 만다.
보트 하우스는 불타고, 보트는 해방되지만, '정착할 곳'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숯덩이가 된 나무 판자로 보트를 만들어 노인의 뒤를 따를 것인가. 검게 탄 숯덩이를 주워 모아 새로 보트 하우스를 짓고 하얀 페인트로 단장을 할 것인가."(pp.225)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각설- 그러나 나를 생각한다. '해방'만이 능사인가? 우리는 갖혀있으므로, '해방'만을 진리로 생각할 수 있다(이러한 관념 또한 상대적이지만). '일제강점기'라는 '보트 하우스' 속의 보트(조선인)들은 해방된 이후에 극도의 분열과 혼란을 야기했고, 그러다 다시 '이데올로기'라는 '보트 하우스'에 다시금 갖혔으며, 그 가운데 남한 사람들은 '군사 독재'라는 또다른 형태의 '보트 하우스'에 이중삼중으로 갖히고 말았었다. 그 중에 '군사 독재'는 열렬한 민주 투사들의 힘으로, 우리의 힘으로 다시 해방을 얻었으나 아직은 이데올로기의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으며, 반목은 지속적이다. 이러하니, 우리의 삶이라고 다른가? 이러하므로 해방만이 능사가 아니다. 해방과 감옥이 반복되는 것이 역사이고 삶일 것이다. '보트 하우스' 속의 주인공들의 삶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해방의 영원한 지속이나 감옥의 영원한 지속이나 그 둘은 모두 (앞서 언급한대로) '지옥'이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도 언제나 '새로운 국면'은 등장하고, 우리는 아마도 그 재미로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 ('10.10.2)
* 이 글은 2012년 1월 2주차 <반디&VIEW 어워드>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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