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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

[서평] 매혹적인 환멸의 세계 - <환상수첩>(김승옥) 어느 날 밤, 나는 죽음을 노래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내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어둡고 습한 곳으로 침잠하려 했는지, 나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게 아주 고통스러운 까닭에서 비롯되는 것. 그것이다. 그것만은 선명하게, 형언할 수 없는 무엇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죽인다는 뜻의 '자살'은 대개 환멸에서 비롯된다. 세상에의 환멸이든, 신에 대한 환멸이든, 사람에 대한 환멸이든, 그 무엇에 대한 환멸이든-결국 같은 맥락일 수 있지만- 환멸이란 소소한 조각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죽음에로의 충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여기, 그 환멸의 한 가운데 선 주인공들이 있다. 소설가는 그들을 .. 더보기
[서평] 어느, '자살자'의 유서 -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일본 근대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소설'(私小說)이다. 사소설은 서구에서 낭만주의 이후 유행했던 '자연주의(사실주의)'의 일본식 변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변형된 일본식 자연주의는 원류에 비하더라도 한층 더 침울하고 기이한 문체를 구성해낸다. 그 점은 아마도 일본의 독특한 문화색 때문일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은 이러한 '사소설'계의 작품 중 대표격이다. 특히,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 이 소설을 더욱 주목 받게 했다. 이 소설을 발표한 직후 작가가 자살을 했기 때문에 이 일종의 '유서'로 해석된 것이다. 일본의 '사소설'은 자연주의의 일반적 경향에 따라 인간 본연의 감정(특히, 성욕이나 우울 등과 관련된)을 적나라.. 더보기
[서평] 해방과 감옥이 반복되는 우리의 삶 - <보트 하우스>(장정일) 장정일의 표지(아래 사진)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오래 전 반복적으로 꾸었던 악몽을 상기했다. 그 꿈은 지독한 것이었다. 발가벗은 남녀가 서로 뒤엉켜 마치 '뇌'의 모양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는데,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것이 어찌나 지독하게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고통 받던, 그 고통이 내게 고스란히 체화되던, 그런 꿈이었다. 벌거벗은 남녀의 '덩어리'는 전혀 외설적이지 않았을 뿐더러, 되레 의식의 세계에서 보지 못한 가장 비극적으고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다(그곳이 지옥이었는지도!). 그 꿈을 꾼 날이면 나는 내 힘으로 잠에서 깨어나기가 무척이나 버거웠다. 중학생 시절 그 꿈을 꾸었던 어느 날은 그대로 실신해 아버지 등에 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