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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

[문장] 이별에 관하여, 삼국유사 간밤, 삼국유사를 읽는다. 조신의 이야기다. 전기류 소설을 공부하던 차에 읽게 된 것이지만, 나는 그만 그 안의 문장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紅顔巧笑, 草上之露, 約束芝蘭, 柳絮飄風, 君有我而爲累, 我爲君而足憂,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붉은 얼굴과 어여쁜 웃음은 풀 위의 이슬이고, 지난과 같은 약속은 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일 뿐입니다. 당신에게 내가 있어 누가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곰곰이 지난 날의 즐거움을 생각하여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과 걱정의 시작이었습니다. 君乎予乎 奚至此極 與其衆鳥之同餧 焉知如隻鸞之有鏡 寒棄炎附 情所不堪 然而行止非人 離合有數 請從此辭. 당신이나 나나 어찌하다 이 지경까지 왔습니까. 새들이 모두 모여 함께 굶주리는 것보다는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보면서.. 더보기
[서평] 머물지 마라 그 아픈 상처에, 허허당 나는 빛나는 한 지점을 보았다 [서평] (허허당) 아픔이란 건 불현 듯 엄습하기 마련이다. 아픔 없이 살아가는 사람 없고, 외로움 없이 견디는 사람 없을 거다. 나어린 내 눈에도 벌써 세상 삶이 이러할 것인데 구도자의 시선을 통한 세상이란 얼마만큼의 아픔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리어 우리는 구도자의 시선을 읽고 싶어진다. 결국 자신의 아픔과 외로움 따위의 괴로움을 직시하고 씻어내기 위하여. 그래서인지 서점 매대엔 참 많은 스님들의 책이 나와있다. 대부분 짧고 쉬운 경구를 통해 우리의 아픈 내면을 보듬는 내용이다. 사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책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러한 책을 통해 삶을 깨닫는다기보다는 그저 살면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기 .. 더보기
[서평]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Raymond Carver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저자 Carver, Raymond 지음 출판사 Vintage | 1989-06-18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In his second collection of stories... 레이먼드 카버는 소위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미국의 소설가다. 그의 문체는 간명하고, 적확하다. 문장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정확히,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 어설픈 감상으로 흐를 염려가 없다. 게다가 고도로 계산된 플롯까지 가세하여 독자를 사로잡아 버린다. 이쯤되니 카버의 '제자'를 자처하는 소설가들도 많다. 잘 알려진 작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김연수(한국), 정영문(한국) 등이 있다. 카버를 추종하는 소설가는 이들 이외에도 부지기.. 더보기
7~9월(3/4분기) 독서 계획 7~9월(3/4분기) 독서 계획 레이먼드 카버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대성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숏컷 김영하 호출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황정은 파씨의 입문 김사과 02 김연수 원더보이(장편) 김숨 투견 간과 쓸개 김성중 개그맨 박성원 나를 훔쳐라 우리는 달려간다 박형서 핸드메이드 픽션 새벽의 나나(장편)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김미월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중혁 일층, 지하 일층 염승숙 [마케팅, 카피라이팅, 스토리텔링] 1. 마케팅 불변의 법칙(알 리스 외) v 2.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박웅현 외) v 3. 블루오션(김위찬 외)-재독 v 4. 블루 엘리펀트(하워드 모스코비츠 외)-재독 v 5. 생각의 탄생(미셸 루트번스타인 외) 6.. 더보기
[문장] 회색인, 최인훈, 209쪽 "서양 사람들이 치른 혁명이란 외적을 물리친 무용담이 아니야. 안에서의 싸움, 자기와의 싸움이었어. 우리들의 정치의식은 이걸 혼동하고 있어.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다는 것과, 인민의 자유를 위해서 싸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야. 독립된 다음에 왕정을 복고시킨대도 민족의 독립이라는 관점에서는 모순이 없지 않나? 그야 독립지사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우선 독립이 목표였다는 건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상 민주주의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어. 어떤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 그 사회가 역사적 결단(즉 혁명이지)에 의해서 채택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얼마나 취약한 건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바로 여기 있어. 그러니까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세력이 민주주의에 대.. 더보기
[장편소설] 노을(1978년), 김원일 "산 위에 걸린 쌘구름이 노을빛에 물들었다. 노을은 산과 가까운 쪽일수록 찬란한 금빛을 띠고 있다. 가운데는 벌겋게 타오르는 주황색, 멀어질수록 보라색 쪽으로 여리어져, 노을을 단순히 붉다고 볼 수만은 없다. 자세히 보면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음에도 사람들은 노을을 단순히 붉다고 말한다."(p.344-345) 우리의 현실이란 얼마나 불확정적인가. 이것이기도 저것이기도 그 둘이기도 하고 둘이 아니기도 한 그 애매모호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될까. 김원일의 은 대한민국 사람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 이념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 특히, 김갑수가 빨치산 아버지 김삼조를 용서하는 장면은 단연 압도적이다. "내가 나뿐 사람이지마는......" 아버.. 더보기
[문장] 휘청거리는 오후, 박완서,137-545페이지 고뇌하던 아버지는 결국 딸아이에서 압수한 세코날 한 주먹을 집어 삼키고 자살을 한다. 그를 그토록 괴롭게 하였던 것은 무엇일까? 여자들의 허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을까? 그러나 소설은 단칼에 구분지을 수 없는 '현실'의 비극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특히 심리과 관계에 대한 박완서의 묘파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1977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이 장편소설 속의 내용이 내가 딛고 서 있는 지금/여기 2012년의 풍속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몇몇 구절들 - 상처받은 순정이라면 또 몰라. 상처받은 허영심이라도 우리가 슬슬 기며 아물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아빠는 137 - 이건 고통도 아니고 난관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속이 소리 없이 썩어가고 있는 상태.. 더보기
김원일의 장편소설 <노을>과 노무현 전 대통령 김원일의 (1978, 문학과지성사)을 읽고 있는데, 자꾸만 '봉화산'이란 글자가 눈에 밟힌다. 아닌 게 아니라 김원일은 노무현과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단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원일이 4년 선배다. 봉화산이며 여래리며 여래천이며 김해 진영읍 일대가 그림 그리 듯 눈앞에 선하다. 가보고 싶으나 가볼 수 없어서, 로드뷰를 켜고 그곳을 에둘러봤다. 소설 속에 그려진 혼란의 풍경은 흔적도 없다. 배도수가 숨어들었던 봉화산 그 밑으로 노무현 묘역만이 덩그러니 펼쳐질 뿐이다. 내 머릿속의 역사라는 것, 이런 순간에 얽히고, 섥힌다. 네이버 로드뷰 서비스를 통해 본 봉화산. 그리고 그 밑의 노무현 묘역. 더보기
[문장] 그레이트 하우스, 니콜 크라우스, 65페이지 제가 선택한 삶, 타인의 자리가 거의 없는 삶이요,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를 엮고 지내는 그런 관계라는 것이 전혀 없는 삶이라면, 그런 고립된 삶을 살면서까지 쓰고 싶었던 글을 실제로 쓸 수 있을 때만 납득이 되겠죠. 그런 삶의 조건이 고난이었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표현일 거예요. 제 속의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저를 그런 부대낌에서 비껴나게 했고, 우연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현실보다는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의미가 충만한 허구를 선호하고, 다른 사람의 논리와 흐름에 제 생각을 맞춰야만 하는 고된 소통보다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자유를 선호하게 했죠. - 그레이트 하우스, 니콜 크라우스, 65페이지 더보기
[스크랩] 무슨 책을 읽어야 인생이 바뀔까(한겨레 칼럼, 정여울) 6월 2일 자 한겨레 신문 16면에 실린 칼럼입니다. 무슨 책을 읽어야 인생이 바뀔까 정여울의 청소년인문학 2012.06.01 볼 때마다 가슴 설레는 그림이 있다. 페르메이르(베르메르)의 (1659)이 그렇다. 창가 햇살을 등불 삼아 편지를 읽는 그녀의 발그레한 볼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이 순간, 마치 세상에는 편지 한 장과 그녀밖에 없는 듯하다. 기이한 열패감과 맹렬한 질투심이 한꺼번에 끓어올랐다. 나는 결코 그녀가 읽는 편지의 은밀한 기쁨에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주를 저 좁다란 편지에 압축한 듯, 그녀는 전존재를 편지 한 장에 집중하고 있다. 이 넓은 우주에서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뛰는 심장, 단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붉어지는 볼. 이 그림은 생애 한 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