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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문장] 휘청거리는 오후, 박완서,137-545페이지 고뇌하던 아버지는 결국 딸아이에서 압수한 세코날 한 주먹을 집어 삼키고 자살을 한다. 그를 그토록 괴롭게 하였던 것은 무엇일까? 여자들의 허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었을까? 그러나 소설은 단칼에 구분지을 수 없는 '현실'의 비극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특히 심리과 관계에 대한 박완서의 묘파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1977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이 장편소설 속의 내용이 내가 딛고 서 있는 지금/여기 2012년의 풍속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몇몇 구절들 - 상처받은 순정이라면 또 몰라. 상처받은 허영심이라도 우리가 슬슬 기며 아물려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아빠는 137 - 이건 고통도 아니고 난관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속이 소리 없이 썩어가고 있는 상태.. 더보기
[문장] 그레이트 하우스, 니콜 크라우스, 65페이지 제가 선택한 삶, 타인의 자리가 거의 없는 삶이요,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를 엮고 지내는 그런 관계라는 것이 전혀 없는 삶이라면, 그런 고립된 삶을 살면서까지 쓰고 싶었던 글을 실제로 쓸 수 있을 때만 납득이 되겠죠. 그런 삶의 조건이 고난이었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표현일 거예요. 제 속의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저를 그런 부대낌에서 비껴나게 했고, 우연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현실보다는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의미가 충만한 허구를 선호하고, 다른 사람의 논리와 흐름에 제 생각을 맞춰야만 하는 고된 소통보다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자유를 선호하게 했죠. - 그레이트 하우스, 니콜 크라우스, 65페이지 더보기
[서평] 창업상식사전, 조재황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실낮 같은 동아줄을 제공함! [서평] 창업상식사전, 조재황 지음, 길벗, 15800원 가히 '안팎곱사등이'의 형국이다. 구직자에겐 취업문이 바늘구멍만큼이나 좁고, 이미 직장을 갖고 있는 직장인들은 언제라도 이직을 꿈꾸기 때문이다. 없어도 문제, 있어도 문제인 것이다. 이쯤되면 흔히 사람들은 '창업'을 떠올리게 된다. 어디에선가 '블루오션' 어쩌구 하는 말도 들어 본 것 같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 같은 인재가 구태여 취직에 목을 메야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래, 창업을 해보자!"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어느 누가 월급쟁이로 살까. 그렇다고 창업을 이차저차 한다고 해서 그게 끝이던가.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창업 역.. 더보기
[서평] 오소리네 집 꽃밭, 권정생 정승각 오랜만에 펼쳐 본 동화책 동화책은 순결합니다. 세상 풍파를 만나기 전, 그 인간의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저런 감상은 도리어 동화책 앞에 불경해지는군요. 어쨌든, 동화는 회귀하고 싶은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이라는 동화책을 읽었네요. 이따금 동화를 읽어 보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주인공은 '잿골 오소리 아줌마'예요. 오소리 아줌마는 어느날 양지볕에서 졸다가 회오리바람을 만나 데굴데굴 굴러가게 됩니다. 바람이 그친 곳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이었어요. 오소리 아줌마는 그곳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얼른 도망을 칩니다. 도망치다 만난 곳이 바로 꽃밭이에요. "어머나, 예뻐라." 우연히 아름답게 조성된 꽃밭을 본 오소리 아줌마는 자기.. 더보기
[서평] 나는 세계의 배꼽이다!, 살바도르 달리 엄마 뱃속을 기억하는 한 예술가의 자서전 살바도르 달리의 이름이 낯설지라도,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들어봤을 것이다. 다다이즘에 뿌리를 둔 이 미술사조는 여타의 이론적 설명을 곁드리지 않더라도 대강의 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환상이고 몽환이며 기괴할 것이다. 1989년에 세상을 떠난 살바도르 달리는 20세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작가였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 1904-1989) 그는 그 스스로 '자서전'을 썼는데-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자서전'은 자신의 쓰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 반대가 상식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는 지금껏 세상에 발표되어 온 어느 자서전과 비교해도 유별난 점이 있다. 달리는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으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이 포.. 더보기
[서평] 날마다 축제, 강영숙 사파리 같은 세상 강영숙의 단편 「씨티투어버스」와「태국풍의 상아색 쌘들」을 중심으로 「씨티투어버스」를 읽으며 나는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겁에 질려서 무엇에 쫓기는 줄도 모르는 채 앞으로만 달리”던 “흰 뿔이 달린 들소”에 내 자신이 중첩됐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씨티투어버스’는 어쩌면 사파리를 여행하는 지프차인지도 모른다(알바를 하며 광화문 네거리를 지날 때마다 나는 그 버스를 보았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폐쇄가 예고”된 서울은 인공으로 도심 한 가운데에 조성된 사파리가 된다. 씨티투어버스는 그 사파리를 드나드는 유랑열차 정도가 되겠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섬뜩하고, 불길했다. 서울시티투어버스(연합뉴스) 얼핏 두 작품은 서로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하는 것.. 더보기
[서평] 찌질한 삶에 대하여 -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찰스 부코우스키) 쿨하고, 경쾌하다. 이 소설은 정신착란, 섹스, 술, 마약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소설이지만 소설이란 장르의 구심을 벗어나려 한다. 아니, 벗어나든 하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소설은 모든 '구습'들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무신경함 위에 서있다. 소설은 그러므로 쿨하고, 경쾌해질 수밖에 없다.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1994년 타계했는데, 그의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졌다고 한다. "Don't Try." 해석하자면, "애쓰지 마라!" 정도가 될까. 그래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론가 '편입'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가 성공과 돈과 명예와 사랑에 집착하는 것이나 정신착란과 섹스와 술과 마약에 집착하는 것이나 모두 '집착'아니던가. 모두 제정신은 아닌 상태다. 더하면 더했지 어느 쪽도 '중도'는.. 더보기
[서평]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 - <무정>(이광수) 이광수의 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이다. 여기서 '우리나라'란 분단 이전의 식민지 조선을 지시하므로 지금/여기의 관점으로는 남과 북을 포괄하는 단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단어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용어에 대해 천착하자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비근한 예로, 1945년 8.15는 '한국의 광복'인가 '조선의 광복'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광복'인가. 그래서 재일교포들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포괄하여 '코리아'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쓴다고 하던가. 나는 편의 상 '우리나라'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문학 계보를 논함에 있어, 특히 해방 전의 문학을 논함에 있어서는 남과 북의 불리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광수의 만큼은 한국 .. 더보기
[서평] 섬뜩한 평론 - <몰락의 에티카>(신형철) 신형철은 "기괴함(grotesquerie)이 낯선 것들과의 조우에서 발생하는 미학적 효과라면 섬뜩함(uncanniness)은 낯익은 것이 돌연 낯선 것으로 전화될 때 발생하는 (미학적 효과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효과"(, p.672)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이라면, 나는 늘 섬뜩함 속에 산다. 걷던 길은 낯설어지고, 익숙한 사람들의 이름은 어느 순간 낯설어진다.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졌던 박성원 존함 세 자와, 박혜경 존함 세 자를 신형철의 책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내 스승 두 분을 나는 사랑하고, 존경하고, 흠숭한다. 가까이 있되 가까워질 수 없는 경지에 있는 분들이다.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 각설하고- 신형철이 섬뜩함을 말한 지점은, 편혜영의 소설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더보기
[서평] 장난기의 철학 -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셸 실버스타인) 셸 실버스타인을 모르더라도, 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버스타인은 바로 의 저자로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활용해 우리에게 많은 일깨움을 주던 작가였다. 그는 1999년 작고했는데, 이번에 그의 유고작을 묶어 (살림)라는 이름의 시집이 나왔다. 옮긴이가 김기택 시인이라고 하니, 번역본으로서의 가치도 원작에 비해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 기대할 수 있었다. 책은 내 손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담고 있는 내용만큼이나 앙증맞다. "Every Thing On It."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손바닥만한 요 책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발칙한 주장이 말이다. 원작의 표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어판만큼은 편집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느꼈다. 저자 셸 실버스타인은 1930년 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