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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사각형/책을 벗기다

[서평] 사랑한다는 것 -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생은 생을 비춘다. 너는 나의 거울, 나는 너의 거울이다.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독고다이는 비루하다.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도그마는 필연적으로 붕괴를 앞두어야 한다. 생이 생을 비추고, 네가 나를, 내가 너를 비추는 그 인드라망 속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사람다워진다. 그렇다면 제각기 존재하는 각인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는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에밀 아자르의 소설 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단언한다. 어찌 보면 진부한 답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하지만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 사랑을 글자로 익힌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은 에밀 아자르가 간파한 생이라는 것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랑’이라.. 더보기
[서평] 사회주의 학자가 바로 본 조선의 역사 - <민중조선사>(전석담) 통일은 반드시 온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 갈라진 물길은 언제나 하나의 바다로 흐르는 법이다. 이 민족도 가까운 시간 안에 통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통일을 말하면 '운동권'으로 이미지가 떠오르게 된 적이 있다. 통일은 '운동권'의 캐치프레이즈가 되고 여당의 대표적 구호가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래서 통일을 말하는 자에게 '색깔'을 뒤짚어 씌우는가 하면, 심지어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식의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다 정치적 이유에서다). 물론, 수많은 우리 국군을 죽인 북한의 공산당이 저주스럽고, 그러한 북의 지도자가 혐오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순수한 의미의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인민'들을 아사(餓死)의 낭떨어지로 밀어붙이는, 저 정체불명의 집단을 추악스럽게 여.. 더보기
[서평]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하여 -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베아테 테레자 하니케)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드러내기엔 꺼려지는 문제들이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말이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비화하지 않는 이상 말 그대로 '개인의 문제'에 그친다. 문제는 후자이다. '분명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드러내기엔 꺼려지는 문제'가 '사회적 문제'라면 그건 대단한 모순이고 그 자체로 썩은 대들보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경우다. 방관하는 순간부터 집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성폭력 문제이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성폭력이란, 성추행(간접적)과 성폭력(직접적)을 두루 아우르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상 '성폭력'이라 하면, 후자의 경우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성 문제'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 더보기
[서평] 대신 써준 자서전이었다! -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기호) 대신 써준 자서전이었다! 이기호의 소설집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단편 「원주통신」과 「수인」을 중심으로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전 S대 학생입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믿어요? 그럼 재학증명서를 떼어 오세요.”하는 게 내가 사는 세상이다. ‘구술’만으로는 나를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십대가 되던 순간부터 증명서 뗄 일이 참 많아졌다. 그 증명서들이라는 것이 각기 이름만 다를 뿐이지 기실 그 구실은 ‘내 신분 증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주민등록증이 대표적이다. 그곳엔 내 고등학교 시절 얼굴과, 숫자화 된 나의 좌표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지문과, 거주지의 이동 경로 등이 빼곡하게 새겨져있다. 거기에는 내 성격,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걸었던 길의 의미.. 더보기
[서평] 아이팟과 프레고 스파게티의 공통점은? - <블루 엘리펀트>(하워드 모스코비츠) '블루오션'을 여는 구체적인 기법를 소개해 노던 아이오와 대학교(University of Northern Iowa)의 컴퓨터학과 학과장 유진 월링포드(Eugene Wallingford)는 2004년, 자신의 블로그에 아래와 같은 제목의 포스트(www.cs.uni.edu/~wallingf/blog)를 올린다. "아이팟이 프레고 스파게티 소스와 공통된 점은 무엇인가?"(pp.113) ("What Does the iPod have in Common with Prego Spaghetti Sauce?") 월링포드는 어느 날, 농구경기를 기다리던 중에 예전에 써놓았던 두 개의 에세이를 읽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 하워드 모스코비치는 월링포드가 이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두 개의 글이 공통된 맥락 속에 있다.. 더보기
[서평] 매혹적인 환멸의 세계 - <환상수첩>(김승옥) 어느 날 밤, 나는 죽음을 노래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내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어둡고 습한 곳으로 침잠하려 했는지, 나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게 아주 고통스러운 까닭에서 비롯되는 것. 그것이다. 그것만은 선명하게, 형언할 수 없는 무엇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죽인다는 뜻의 '자살'은 대개 환멸에서 비롯된다. 세상에의 환멸이든, 신에 대한 환멸이든, 사람에 대한 환멸이든, 그 무엇에 대한 환멸이든-결국 같은 맥락일 수 있지만- 환멸이란 소소한 조각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죽음에로의 충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여기, 그 환멸의 한 가운데 선 주인공들이 있다. 소설가는 그들을 .. 더보기
[서평] 어느, '자살자'의 유서 -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일본 근대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소설'(私小說)이다. 사소설은 서구에서 낭만주의 이후 유행했던 '자연주의(사실주의)'의 일본식 변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변형된 일본식 자연주의는 원류에 비하더라도 한층 더 침울하고 기이한 문체를 구성해낸다. 그 점은 아마도 일본의 독특한 문화색 때문일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은 이러한 '사소설'계의 작품 중 대표격이다. 특히,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 이 소설을 더욱 주목 받게 했다. 이 소설을 발표한 직후 작가가 자살을 했기 때문에 이 일종의 '유서'로 해석된 것이다. 일본의 '사소설'은 자연주의의 일반적 경향에 따라 인간 본연의 감정(특히, 성욕이나 우울 등과 관련된)을 적나라.. 더보기
[서평] 해방과 감옥이 반복되는 우리의 삶 - <보트 하우스>(장정일) 장정일의 표지(아래 사진)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오래 전 반복적으로 꾸었던 악몽을 상기했다. 그 꿈은 지독한 것이었다. 발가벗은 남녀가 서로 뒤엉켜 마치 '뇌'의 모양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는데, 의식이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것이 어찌나 지독하게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고통 받던, 그 고통이 내게 고스란히 체화되던, 그런 꿈이었다. 벌거벗은 남녀의 '덩어리'는 전혀 외설적이지 않았을 뿐더러, 되레 의식의 세계에서 보지 못한 가장 비극적으고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다(그곳이 지옥이었는지도!). 그 꿈을 꾼 날이면 나는 내 힘으로 잠에서 깨어나기가 무척이나 버거웠다. 중학생 시절 그 꿈을 꾸었던 어느 날은 그대로 실신해 아버지 등에 업.. 더보기